원·달러 환율 '30일 오후 3시' 급조정 없다

점진적 하락… "97년말 재판 없을 것"
기업들 "50원만 더 떨어졌으면…"

12월30일 오후 3시.올해 외환거래가 끝나는 이날 시장 평균 환율에 결산을 앞둔 기업과 은행,해외 유학생을 둔 학부모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가 외환위기 때인 1997년 말 하루에 원.달러 환율을 230원 떨어뜨린 것처럼 30일에도 대대적인 개입을 통해 일거에 내려줄 것을 이들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외환 손실을 줄이는 게 시급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국내 상장.등록법인 1624개의 순외화부채(외화부채-외화자산)는 413억4000만달러다. 작년 말 936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9월 말 1207원까지 오르며 이들 기업은 이미 15조원 이상의 외환 손실을 입었다. 26일 원.달러 환율이 1299원에 마감한 점을 감안하면 9월 말 이후에도 추가로 3조8000억원 이상의 외환 손실이 우려된다.

특히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한 태산LCD는 환율 급등으로 외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흑자 부도를 냈고 주거래은행인 하나은행도 4분기 적자를 걱정하고 있다. 환율 급등은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에도 치명적이다. 원화로 환산한 외화대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환율이 100원 오를 때마다 은행의 BIS 기본자본비율은 0.3%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외환당국은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지난주부터 종가 관리에 들어갔다. 정부는 공기업의 달러 매입 수요를 내년 초로 미루고 은행과 기업들에도 달러 매입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물론 직접 시장 개입에 나서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은 "최근 외환시장 거래량이 하루 평균 30억달러에도 못 미쳐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적은 금액으로 환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규모 개입을 통한 환율 급락 가능성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은행권에서는 현재의 수준에서 50원 떨어진 1250원 정도면 원하는 BIS 비율을 유지할 수 있다며 그 정도까지라도 떨어뜨려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대해 외환당국은 일시적인 하락 조치는 곧바로 급반등을 가져올 수 있다며 외환위기 때 취한 비상조치는 생각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환율 관리에 비상이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환율 수준이 수출업체들에는 도움이 되는 데다 과도한 시장개입은 자칫하면 투기세력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내년 1분기에 국내외 경기가 본격적인 침체에 빠지고 외국인 자금 이탈이 재연된다면 환율이 다시 치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