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미래에 투자하라 (2) 삼성 "노키아 철옹성 아니다"…유럽ㆍ美 이어 中ㆍ인도로 전선 확대

삼성전자에 노키아는 절망의 벽이다. 사력을 다해 쫓아가면 상대는 더 멀리 달아난다. 메모리 반도체시장을 석권하고 디스플레이 세계 1위의 위업을 달성한 삼성이지만 휴대폰만큼은 좀처럼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윤우 부회장은 최근 사석에서 "노키아는 정말 괴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은 노키아를 넘지 않고서는 글로벌 톱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휴대폰은 반도체나 LCD(액정표시장치)와 같은 대규모 장치사업에 비해 적은 투자로도 양질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작은 대신 브랜드 디자인 등과 같은 소프트파워가 경쟁력을 가름하는 첩경이다. 아이폰 구글폰 등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휴대폰은 제조업체의 글로벌 이미지를 결정하는 힘까지 갖고 있다. 종합전자회사로서 세계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꿈꾸고 있는 삼성으로선 노키아와의 진검 승부를 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최지성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2007년 1월 취임 이후 "1~2년만 기다리면 큰 변화가 올 것"이라며 노키아 추격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당시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2.5배에 달하는 시장점유율과 세계 최고의 원가 경쟁력을 가진 노키아와의 맞싸움은 먼 훗날의 얘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르도TV'로 2006년 한국TV 1등 신화를 이끌어낸 '최지성 효과'는 휴대폰 사업에서도 금세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성은 곧바로 2007년 2분기 휴대폰 업계의 맏형 모토로라를 3위로 밀어내고 '넘버 2' 자리에 올랐고,이후 끈질기게 노키아를 따라붙고 있다. ◆'휴대폰 공룡' 노키아

핀란드에서 제지회사로 출발한 노키아는 1990년대 초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휴대폰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 회사로 변신했다. 1998년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이후 단 한 번도 1등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철옹성을 쌓고 있다.

노키아가 2007년 4분기 사상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40%를 돌파하고 영업이익률 25.0%를 기록했다고 발표하자 글로벌 경쟁사들은 경악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너무 놀랍다는 것이었다. 당시 노키아의 휴대폰 판매량은 1억3350만대로 세계 2~4위 업체인 삼성전자 모토로라 소니에릭슨의 판매량을 합한 것보다도 많았다. 25.0%라는 영업이익률은 경쟁 업체들의 2~3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노키아의 막강 파워는 △규모의 경제 △세계적인 유통망과 브랜드 가치 △글로벌 공급망관리(SCM) △신흥시장 공략 성공 △대규모 원천기술 보유 등에서 나온다. 분기당 1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팔고 있는 노키아는 위탁 생산 등을 통해 세계 각지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다. 원천기술부터 연구ㆍ개발(R&D),제조까지 완벽한 수직 계열화를 통해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저가에서 고가까지 제품군도 다양하다. 전 세계 14개국에 R&D 센터를 두고 있으며 해마다 100여종의 휴대폰을 선보인다. 종업원 6만여명 중 3분의 1이 R&D 업무를 맡고 있는 것도 노키아의 강점이다.

◆선진-신흥 시장 같이 뛰어라

지난해 3분기,삼성전자는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둬냈다. 노키아의 판매량이 경기 불황 여파로 500만대 줄어드는 동안 삼성은 오히려 610만대나 늘리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지난해 3분기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은 38.9%로 여전히 삼성전자(17.1%)의 2배가 넘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올해 마케팅 예산을 대폭 늘려 노키아와의 격차를 10%포인트대로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주우식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테크포럼'에서 "세계 휴대폰 시장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점유율 20% 이상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은 지난해부터 확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키아의 텃밭인 유럽 시장에서 고급 터치스크린폰과 카메라폰 등을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선 노키아의 2배가 넘는 40%에 가까운 점유율로 확실한 1위를 지키고 있고,영국에서도 30%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노키아와의 격차를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모토로라의 안방인 미국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22.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 진출 11년 만에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단일 휴대폰 시장으로는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은 글로벌 업체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라며 "삼성 휴대폰의 미국 시장 1위는 그만큼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신흥시장이다.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넘기 위해서는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에서 세력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삼성은 올해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의 최대 격전지인 중국 시장에서 전국적인 유통망 구축에 주력할 계획이다.

노키아(점유율 70.3%)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15% 이상으로 끌어올려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인도 전역을 4대 권역으로 분할해 집중 유통 구조를 확립하고,소규모 유통점에 대한 제품 세일즈 교육과 서비스도 강화할 예정이다.

◆적의 시스템도 우리 것으로 만든다

삼성전자는 최근 최지성 사장의 주재로 매주 수요일마다 '글로벌 오퍼레이션' 회의를 열고 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재고 물량과 생산 능력,부품 잔량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노키아식 공급망관리 시스템을 뛰어넘겠다는 의도에서다.

이 회의에선 국내는 물론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전 세계 지사와 공장의 생산ㆍ구매ㆍ영업 담당 임원들을 화상으로 연결,제품의 생산ㆍ판매ㆍ물류에 이르는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있다. 문제점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의 빠른 의사결정 구조도 갖췄다. 개발 비용을 최소화하는 노키아식 '원형 디자인' 생산(기준이 되는 한 제품을 중심으로 동일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제품을 찍어내는 것)도 이미 삼성만의 방식으로 재탄생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휴대폰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부품과 디자인을 표준화하고 휴대폰 모델 숫자를 줄이는 플랫폼 전략도 갖춰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