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자산가가 본 새해 재테크] 먹구름 낀 부동산 시장…"투자는 3분기에 집중" 47%


고액 자산가들은 올해 부동산 시장을 '흐림'으로 예보했다. 기상예보에서 '흐림'은 하늘의 90% 이상이 구름에 덮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설문 조사에서도 이런 전망은 여실히 드러난다. 각종 투자상품 가운데 올해 투자를 가장 많이 늘릴 부문을 고르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주식(37%)과 예금(27%),채권(20%) 다음으로 부동산(16%)을 꼽았다. 비중이 아주 낮지는 않지만 순위로는 꼴찌다. '올해 부동산 투자를 늘릴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67%가 '없다'고 답했다. '시장 침체의 계속'을 이유로 든 사람이 82%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동산에 대한 고액 자산가들의 관심이 그만큼 많이 줄었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는 펀드 투자손실이 커 부동산 시장에 눈을 돌릴 여유자금(유동성)이 많지 않다.

김창수 하나은행 아시아선수촌 골드클럽 PB팀장은 "펀드 같은 금융투자상품에 자산의 4% 이상을 넣지 않던 부자들이 펀드 투자붐으로 그 비중을 10% 가까이 늘리다가 역풍을 맞았다"며 "보유자산 규모는 크지만 유동성이 달려 부동산 투자에 나설 수 없는 부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역(逆)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부자들에게는 지금이 절호의 찬스다.

김 팀장은 "정기예금 금리가 7%나 되는데 뭐하러 부동산에 투자하느냐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금리가 3%대로 떨어지면서 유동성이 있는 자산가들은 부동산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지점장에 따르면 최근 한 고객이 서울 반포동 교보타워 사거리에 있는 상가건물을 380억원에 사들였다. 6층짜리 낡은 건물이지만 워낙 입지가 좋아 땅(830㎡)을 보고 큰 결정을 내렸다. 20층짜리 빌딩으로 재건축할 계획이다. 그래서 대출도 100억원만 받고 주로 자기자금으로 이 물건을 매입했다. 고 지점장은 "투자여력이 있는 부자들은 자본수익과 임대수익을 동시에 올릴 수 있는 상가건물,적게는 30억~40억원에서 크게는 몇 백억원 하는 빌딩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9월 지점장으로 부임한 이래 4개월 사이에 이런 건물을 사달라고 요청한 고객만 2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작년 초 토지보상을 받아 자산이 200억원에 육박하는 한 부자도 최근 경기 부천에 6층짜리 빌딩을 40억원에 매입했다.

박합수 국민은행 PB사업본부 부동산팀장이 "좀 더 기다렸다 매입하라"고 충고했지만 워낙 깔끔한 건물 외관에 마음을 뺏겼다고 한다. 그래도 47억원에 나왔던 매물을 7억원 가까이 깎았다. 월 임대수익도 2000만원가량으로 연간 수익률로는 7%대로 괜찮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상가건물이나 오피스빌딩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공급이 워낙 많았던 주택에 대한 투자 기대치는 낮아지는 대신 상가건물 등의 희소가치는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인하로 건물 임대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메리트가 커진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부동산시장의 전체 기상도는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지역,어떤 상품은 '흐린 뒤 맑음'의 기상상태를 보이는 반면 또 다른 곳은 '한두 차례 비'가 내리는 지역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 PB팀장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모든 지역이 똑같이 오르는 현상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서울 강남과 4대강 개발 유역,토지보상금이 풀리는 지역 등에 관심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유동성이 있는 PB 고객들은 강남에서 좋은 부동산 물건이 나오는 게 없는지 부쩍 많이 물어온다"고 말했다.

투자 타이밍은 그러나 '좀 더 지켜보자'는 쪽이 대세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저렴한 물건이 많이 나오고 중소기업 오너들이 가진 아파트가 경매시장에 쏟아질 테니 올 상반기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실제로 설문에서 부동산 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한 고액 자산가(전체의 34%)에게 다시 '투자적기'를 물어본 결과,47%가 올 3분기라고 대답했다. 2분기도 29%로 높은 편이었다. 해외부동산은 86%가 투자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주택분야에서는 투자 또는 투기수요는 거의 사라지고 실수요만 남았다. 박합수 팀장은 "고액 자산가들도 더 큰,더 좋은 주택으로 갈아타려고 하거나 이번에 강남에 둥지를 틀거나 자녀들에게 줄 요량으로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변수는 당장 10조원가량이 풀릴 토지보상액이다. 서울 마곡지구와 위례(송파)신도시,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에서 1월부터 토지보상이 시작되면 보상금 규모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30~40%가 상반기 말을 전후해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된다면 예상보다 빨리 매수세가 형성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토지보상을 받은 사람들이 강남의 아파트와 상가빌딩,토지를 매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금 유입 규모가 어느정도 될지는 몰라도 일단 대기성 자금이 풍부해져 부동산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