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중산층붕괴 막아라] 자산 '반토막' 자영업마저 '휘청'…무너지는 한국의 허리들

한국의 중산층이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갖고 있는 자산은 하루가 다르게 값이 떨어지고 자영업자들은 도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근로자들은 한발 한발 다가오는 구조조정 공포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외환위기 때 겪었던 중산층 붕괴현상이 그때보다도 더 큰 파고로 우리 사회를 덮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중산층 붕괴는 심각한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경제 발전에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업자 200만명 시대 오나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으로 두텁게 형성돼 왔던 중산층이 처음으로 붕괴 위기에 빠졌던 때는 1997년 말 외환위기였다. 당시 한반도는 '실업대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1998년 실업자 수는 1년 전인 1997년(57만명)에 비해 92만명 늘어 149만명을 기록했다.

실업자의 개념을 좀 더 넓힌 '실질적 실업자'(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자,구직단념자,'그냥 쉬었음' 등을 실업자에 포함)는 200만명이 훨씬 넘었다.

1997년엔 전년보다 8만명 늘어나는 데 그쳤던 비경제활동인구가 1998년 갑자기 85만명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때의 실업 대란이 올해 재연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고용 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산업활동 동향의 급격한 침체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1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광공업 생산은 2007년 같은 달에 비해 무려 14.1%나 감소했다.

역대 최대 감소폭이었던 1998년 7월(-13.9%)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 1975년 광공업생산지수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악이라는 것이 통계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향후 경기상황을 예고하는 지표인 선행종합지수가 12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간 데다 미래 성장동력인 설비투자와 국내 건설수주가 각각 18%와 35.4%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경기 하락만으로도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데 앞으로는 이보다 더 힘든 시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 조정에 앞서 나타나는 현상인 조업 중단도 속속 목격된다. 모터사이클 전문생산업체인 S&T모터스는 연간 1000억원어치 이상의 오토바이 및 관련 엔진을 생산하는 창원공장을 열흘 넘게 가동 중단했고 일진다이아몬드도 충북 음성공장의 조업을 한 달간 중지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1400여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11월 평균 설비가동률은 67.1%로 전달 68.9%보다 1.8%포인트 떨어졌다.

정부 관계자도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실업자 수 100만명 증가,일자리 200만개 감소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조만간 발표될 12월 고용통계에서부터 신규 취업자 수(전년 동기 대비 취업자 증가 인원)가 마이너스로 반전되고 올 상반기엔 마이너스의 폭이 급격하게 커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자영업 몰락 가속화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자영업자들이 올해엔 '퇴출 쓰나미'를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작년 10월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10%대)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편이다.

자영업자들은 소비 위축에 따른 매출 부진뿐만 아니라 자금시장 경색으로 인한 위험도 감수해야 할 판이다. 정부가 아무리 대출 확대를 주문해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야 하는 은행들은 신용도가 낮은 자영업자들과 거래를 하려들지 않는다.

금융위에 따르면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대출 규모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전달에 비해 3407억원 증가했지만 그 후론 감소세로 돌아서 9월엔 전달보다 991억원,10월엔 1083억원 줄었다.

자영업자 퇴출 쓰나미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내 자영업주는 600만3000여명으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8만3000여명이나 감소했다.

◆자산가치 추가 하락 우려도

중산층의 보루이자 상징인 '자산'은 이미 큰 구멍이 났다. 여유자금을 넣어뒀던 주식과 펀드는 지난해 반토막이 났다. "재산이 반으로 줄었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중산층 재산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주택이 걱정거리로 전락한 경우도 많다. 아파트 가격이 몇 달 새 1억원 넘게 떨어진 곳이 허다하고,그나마 잘 팔리지도 않는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주택담보대출 이자는 어김없이 내야 하니 생활고는 깊어만 간다.

다행히 최근에 금리가 내려 이자부담이 크게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주택 등의 자산가격 하락이 올해에도 진행된다면 중산층 붕괴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상로 산은 경제연구소장은 "고소득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저소득층은 경기침체시 보유자산을 처분할 가능성이 높다"며 "차후 경기회복으로 자산가격이 상승할 때 상류층은 다시 자산을 구입해 자산 증식을 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그럴 수 없어 중산층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