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Auto가 만난 사람] "자동차 영업도 마술처럼…25년간 4000대 팔아치웠죠"

25년간 4000여대의 자동차를 팔아 아홉 차례나 판매왕을 거머쥔 '영업의 달인' 박상면 기아자동차 영등포지점 영업이사(57 · 사진)를 서울 당산동 기아차 대리점 내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빨간공 2개를 3개로 만드는 마술을 보여주는 것으로 첫인사를 대신했다. 3년 전부터 배운 마술은 영업의 도구이자 고객에 대한 서비스다. 지난해엔 기아차 CF의 주인공으로도 활약했다. '난 마술하는 영업사원 박상면.진짜 영업은 마음을 움직이는 거다. 바로 내가 고객 앞에서 마술을 하는 것처럼….'이란 광고 카피로 주목받았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중학교 시절 구두통을 짊어지고 오르내리던 평창동에 집을 한채 짓는 게 삶의 목표였죠." 그가 자동차 영업사원의 길을 선택한 데엔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2살에 아버지를 여윈 그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군에 입대한 형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맡았다.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구두닦이 배추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고학 끝에 간신히 대학을 졸업한 그는 모 건설회사 자금담당 직원으로 입사했지만 샐러리맨 월급으로 부자의 꿈을 이루기엔 역부족이었다. 회사를 나와 가방공장 포장마차 분식집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벌였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일확천금을 향한 무모한 도전 끝에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깨달았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우연히 신문에서 기아자동차 영업사원 모집공고를 본 그는 무작정 김선홍 전 기아차 회장을 찾아갔다. 수차례 문전박대를 당한 끝에 회장실 방문에 성공한 그는 "1000만원이 넘는 차를 팔아야 진짜 영업인이다. 1등 영업맨이 되고 싶다"며 김 회장을 설득시켜 기아차 신입 영업사원으로 특채됐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소중한 일자리였던 만큼 그는 무섭게 몰입했다. 하루 50여명의 고객을 방문하고 오후 3~4시가 돼서야 점심을 먹을 정도로 일에 집중한 결과 초고속 성과를 냈다. 입사 6개월 만에 월 20대를 판매하는 지점 최대판매자로 떠올랐고,1년 4개월 뒤에는 기아차 판매왕 자리에 등극했다.

'인연이 성공줄이다. ' 30여개가 넘는 그의 영업 노하우 중 하나다. 그는 "한번 맺은 인연은 악연이라도 소중히 해야 한다"며 취직문을 두드리던 자신을 매몰차게 내쳤던 모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박 이사는 "마치 잡상인 취급하듯 무시를 당했다"며 "기필코 성공해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말했다. 1986년 맨처음 받은 판매왕 표창장을 들고 모멸차게 대했던 이 임원을 찾았다. 이 임원은 미안함의 표시로 업무용 차량 200여대를 계약해줬다. 악연이 소중한 인연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박 이사는 이때부터 '영업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맨파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그가 관리하는 고객은 6000여명.아직도 매일 20장의 안부카드를 손수 작성해 고객에게 돌린다. 차량 출고에서 인도,애프터서비스(A/S)에 이르기까지 고객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야 고객명부에 도장을 하나씩 찍는 것도 고객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겠다는 그의 다짐이다. 1984년부터 지금까지 자동차 판매왕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는 2003년 꿈에 그리던 평창동 저택을 손에 넣었다. 대지가 200평에 달하는 큰 집은 가난한 집안의 소년가장에서 기아차 판매왕 자리에 오르기까지 혹독한 시련을 홀로 견뎌낸 데 대한 보상이다. 하지만 그는 "막상 남들이 말하는 부자가 되고 나니 진짜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판매왕의 새해 목표는 소박했다. "수많은 고객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습니다. 죽을 때는 빈손으로 돌아가야지요. " 그는 매달 소년원 보육원 등 복지시설을 찾아 무료 마술쇼를 보여주며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평창동 저택은 조만간 처분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글=김미희 기자/사진=김영우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