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월마트가 美경제에 기여하는 것

이제민 <연세대 교수ㆍ경제학>

저가격으로 소득불균형 상쇄 세계화 부작용 주장 근거없어

최근 미국의 한 저명한 경제학자가 오바마 정부는 '반기업' 정책을 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학자는 열렬한 오바마 지지자다. 이 학자뿐 아니라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앞으로 오바마 정부가 '반기업',그리고 같은 선상에서 '반세계화' 정책을 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반기업'의 내용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월마트 같은 것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예다. 저임금에다 의료보험도 안 들어 주고 노동조합도 허용하지 않는 월마트의 행태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반세계화'의 내용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중국 같은 나라로부터의 값싼 수입품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반기업 반세계화 정서의 바탕에는 1980년대 이후 친기업 정책과 세계화가 불평등을 확대해 왔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중국 등으로부터의 수입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현 위기가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5% 정도로서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반면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불평등이 심각하게 확대돼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친기업정책이나 세계화의 결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작년에 크리스천 브로다와 존 로말리스라는 경제학자가 쓴 '불평등과 가격;중국이 미국의 빈곤층에게 이익이 되는가?'라는 논문이 그렇다.

이들은 지난 10여 년간 명목소득의 변동으로는 미국의 불평등이 크게 확대됐지만,실제로 소비하는 내용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빈곤층과 부유층이 소비하는 품목이 다른데,빈곤층이 소비하는 품목의 가격 상승률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가 나는 주된 이유는 빈곤층의 지출 비중이 높은 의복이나 식품 같은 재화,그 중에서도 중저가품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면서 그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부유층이 많이 소비하는 서비스는 수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가격이 많이 올랐다.

월마트 같은 슈퍼스토어의 존재도 빈곤층과 부유층이 소비하는 품목 간의 가격 상승률 차이를 가져오는 요인이다. 빈곤층이 이런 유의 가게에서 구매하는 의복이나 식품 등 비내구 소비재의 비중은 부유층에 비해 두 배에 달한다. 따라서 월마트가 있음으로 해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빈곤층이다. 브로다와 로말리스는 이런 요소들을 감안하면 1994~2005년간 미국에서 대체로 불평등도에 변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함의는 물론 반기업 반세계화 정책은 빈곤층에게 이익이 아니라 손실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임금에다 의료보험도 안 들어 주고 노동조합도 안 된다고 하는 월마트의 행태가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세계화와 중국 등으로부터의 수입 효과만 믿고 지난 30여 년간 엄청나게 확대된 분배의 불평등을 교정하려는 노력을 방기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여느 정부나 마찬가지로 오바마 정부에도 '정책의 우선순위'라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 공황과 싸우는 것이 최우선이지만,그 다음에도 지구 온난화,의료보험,교육,근로장려세제 등의 과제를 우선해야지,'반기업' '반세계화'를 앞세우게 된다면 일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이것이 현 시점에서 오바마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많은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으로 보인다. 나아가서 그것이 바로 오바마 정부가 지난 8년간 부시정부가 저질러 놓은 온갖 '몰상식'을 교정해 주리라고 기대하는 미국 내외의 대다수 식자(識者)들의 생각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