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여론과 맹목적 추종이 빚어낸 사회 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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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사태의 본질미네르바가 결국 구속됐다. 구속적부심도 기각됐다. 검찰과 법원 모두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로 미네르바 사태는 종료되는 것일까. 과거 인기를 끌었던 검사 출신 정치인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당 등 정치권은 그 바쁜 와중에도 미네르바를 옹호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한다. 네티즌도 양분됐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BBK 김경준 사건 때도 그랬고,촛불집회 때도 비슷했다. 인터넷이라는 가공할 권력에 편승한 불법이 포장돼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이념적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제2,제3의 미네르바가 나올 가능성이 짙은 이유이며,사법당국이 통제해야 하는 이유다.
◆미네르바는 여론몰이의 최대 수혜자이자 피해자
미네르바 사태의 본질은 일부 포털이 생산하는 '왜곡된 여론'의 문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촛불집회 관련 허위사실이나 미네르바의 글은 모두 공교롭게도 다음 아고라에서 편향된 다수 네티즌들의 지지를 받았다. 여기에 일부 기성 언론과 특정 성향의 전문가가 가세했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지낸 한 대학교수는 그를 '온국민의 경제스승'으로 치켜세웠다. 일부 공중파 방송은 앵커가 뉴스 말미에 공개적으로 미네르바가 정부보다 뛰어난 정책감각을 가졌다는 뉘앙스를 전달했다. 이들 모두가 박씨를 '전국민적 유명인사'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박씨 본인도 "내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다"고 항변한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네르바 사태는 인터넷 쓰레기 여론 및 유언비어를 '발설'하는 문제가 아니라 '수용'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또 "박씨의 구속은 일종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사법당국의 경종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네르바는 '죄인'이다
박씨의 죄명은 알려진 대로 '전기통신기본법'47조 2항 위반이다. 이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씨가 작년 12월29일 인터넷포털 다음 아고라에 올린 '대정부 긴급공문발송-1보',작년 7월30일 '외화예산 환전업무 8월1일부로 전면중단'이란 글이 문제다.
이 두 글은 견해도,전망도,평가도 아닌'허위사실'이다. 그리고 이 허위사실이'혹세무민'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다. 검찰과 법원은 공히 이 두 글이 전기통신기본법 47조를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 판단했다. 검찰은 "인터넷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정부가 억압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고 가능하지도 않다"면서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장막 안에서 공익을 훼손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자의든 타의든 글을 올릴 당시 미네르바는 인터넷 상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이라는 것이 '공익'을 해쳤다는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공익을 해치는 허위사실 유포의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촛불집회 사태다. 지난달 법원은 촛불집회에서 경찰이 여성을 폭행해 살해했다는 허위사실을 작년 6월 인터넷포털 다음 아고라에 유포한 지방 신문기자 최모씨에 대해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살인경찰,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란 제목으로 달린 이 글은 당시 경찰과 시위대 간 대치 상황을 완전히 왜곡,경찰에 대한 강한 불신을 퍼뜨렸다.
◆정부의 과민반응 시각도심지어 검찰 내부에서조차 인터넷상 여론에 대해 현 정부가 '지나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돼 주목된다. 광우병 괴담→인터넷 여론집결→촛불시위의 악순환 속에 작년 내내 시달린 정부가 과민반응을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한 검사는 "쓸데없는 인터넷 게시글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은 술취한 무리들이 몰려다니며 공개적으로 욕설을 하는 것을 정부가 따라다니며 잡겠다고 하는 꼴"이라며 "검찰과 정부는 변화한 시대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검찰이 주장한 '22억달러 소진설'이다. 검찰은 작년 12월29일 박씨의 글이 오후 1시께 게재된 직후 달러매수요청이 쇄도,다음 날까지 환율 방어에 정부가 22억달러를 투입해야만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글이 블룸버그 통신을 통해 해외로 타전돼 정부 대외신인도를 추락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환딜러 등 일부 전문가들은 과연 '카더라'식 주장과 비방,왜곡,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인터넷 글을 보고 실제 달러매수 패턴을 변화시켰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