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삼성의 선택] (3·끝) '뉴삼성' 밑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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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점 없는 '경영 표류' 마침표 찍는다
삼성 사장단 및 임원 인사에 세간의 이목이 올해처럼 집중된 적은 없었다. 이건희 전 회장이 퇴진하고 전략기획실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인사 실험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건희 전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결과는 세대 교체와 현장 중시로 요약된다. 이 전무가 인사작업을 처음부터 진두지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삼성의 명실상부한 차기 총수이긴 하지만 복잡다단한 요인들을 감안해야 하는 인사업무를 전면적으로 챙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막후 실세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지만 '막후'는 어디까지나 '막후'일 뿐이다.
◆정보의 한계삼성 관계자는 "이 전무가 임원인사와 관련해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다고 하더라도 그 폭은 지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에 물러난 사장단의 대부분이 '만 60세 이상은 퇴진한다'는 원칙에 동의했고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전무가 특정인들에 대한 의견을 내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무가 인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전무를 직접 보좌하는 '친위그룹'의 부재다. 이 전무에겐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참모가 없다. 업무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지근거리에서 항상 그룹의 대소사를 챙기는 스태프 조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인사정보를 혼자서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과거엔 계열사 인사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구조조정본부 인사팀으로부터 종합적인 정보와 흐름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이젠 각 사에 탐문을 해야 할 상황이다. 굳이 관심을 가졌다면 그룹의 양대 축인 전자와 생명 정도로 추측된다. ◆시간이 변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인사를 이재용 전무와 완전히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 역시 단견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 복귀,옛 구조조정본부 체제의 재가동이 사실상 어렵다고 가정할 때 미래 삼성 경영권력의 무게중심은 이 전무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경향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얼마 전부터 사장단 집무실 전화기의 단축키 버튼에는 '이재용 전무'가 올라있다.
따라서 이 전무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게 그룹 안팎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 수순 역시 전무-부사장-사장-부회장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2단계,3단계를 건너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전 회장의 공백을 언제까지나 과도기구인 사장단협의회에 맡겨둘 수 없다는 현실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1968년생인 이 전무는 마흔 살을 이미 넘겼다. 이 전 회장은 45살에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았었다. 2~3년만 지나면 적어도 연령상으로 이 전무의 경영권 장악에 별 부담이 없다는 얘기다.
◆과도기 활용이 관건
최근 삼성 계열사에 불고 있는 일대 조직개편의 바람은 다가올 '이재용 시대'에 대비해 과도기적 상황을 돌파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세대교체가 됐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삼성에서 잔뼈가 굵은 사장단과 호흡을 맞추며 그룹의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꾀하는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전무 입장에선 이런 과도기를 활용해 경영무대 본격 데뷔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의미의 '참모조직'을 건설하면서 과거 이 전 회장이 취임 6년 뒤에 들고나왔던 '신경영'과 같은 획기적인 경영프로그램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많은 삼성 전문가들은 외부 경영여건이 어려워질수록 '이재용 체제'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