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월드] 美, 디지털방송 전면전환 '공방'

오바마ㆍ민주당 "연기해야"
업계ㆍ공화당선 "조속 강행"
다음 달 17일로 예정된 미국의 디지털TV 방송 전면 전환을 앞두고 의회와 오바마 새 정부,업계 등이 첨예한 대립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일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 신임 대통령과 민주당 측은 디지털방송 전환을 미룰 것을 요구하는 데 반해,공화당과 산업계에선 조속한 강행을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주요 언론들은 20일 오바마 대통령 측이 디지털방송 전환 시점을 늦춰줄 것을 의회에 요청한 뒤 곧 바로 민주당의 존 록펠러 상원의원이 해당 시기를 6월12일로 연기하자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경기침체 여파로 상당수 가구가 아직 디지털방송 전용 TV를 갖추고 있지 않은 데다 디지털방송 셋톱박스 구입을 위한 보조금마저 고갈됐다는 이유에서다. 미 정부는 아날로그 방송용 TV를 보유 중인 가정에 디지털 셋톱박스 구입지원을 위한 40~70달러 상당의 쿠폰을 지급해 왔으나 최근 13억4000만달러 규모의 쿠폰발급 예산이 고갈돼버렸다. 이에 따라 지난 4일부터 쿠폰 발급이 중단됐고,현재 쿠폰 발급을 원하며 대기 리스트에 오른 신청자가 21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공화당 측은 전환 연기가 오히려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민주당 측의 제안을 거부했다. 록펠러 의원은 "이번 디지털 전환이 빈민, 노년,장애인 등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며 조만간 법안을 다시 제안할 것이라고 밝혀 양당 간 대립이 재연될 조짐이다.

퇴임을 앞둔 케빈 마틴 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도 지난주 C-SPAN과의 인터뷰에서 두 가지 방안 모두 절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사안의 불투명한 전망을 확인시켰다.

USA투데이는 디지털방송 전환 시기를 늦추자는 입장에는 오바마 대통령 외에 존 매케인 전 공화당 대선후보와 거대 통신회사 AT&T 등이 가세하고 있는 반면,가전제품협회와 통신회사 버라이존은 시기를 늦출 경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디지털방송 전환은 세계 최초로 진행되는 만큼 관련 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이다. 미국이 디지털로 방송 기준을 변경함에 따라 해상도가 높은 디지털 TV와 케이블망 등 관련 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은 채널 배치 계획과 더불어 방송사마다 디지털방송 설비 기한을 설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 정부는 방송사업자들이 기존 아날로그 방송 장비와 별도로 디지털방송 설비를 구축하도록 했으며 2007년 최종적으로 디지털방송 시설 구축 기한을 지정했다. 또 디지털 시설 구축을 완료한 후 각 방송국은 건설 허가를 받아야만 해당 방송국에서 디지털방송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미방송협회(NAB)에 따르면 미국 내 1759개 방송국 중 약 93%가 이미 디지털방송을 실시하고 있으며 나머지도 디지털방송 전환을 위한 준비를 거의 완료한 상태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작년 9월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시에서 전면적인 디지털방송을 시범 실시하는 등 사전 점검을 진행해왔다. 디지털방송 서비스를 받는 가정들은 보다 선명한 TV 화면과 선택의 폭이 넓어진 채널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 달리 대부분의 미국 가정들은 디지털 TV로 교체하거나 디지털방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케이블방송에 가입하기보다는,대당 50달러 내외인 컨버터를 구입하고 있다. 소비자행태 조사업체인 SNL카간의 저스틴 닐슨 애널리스트는 "경기침체로 대부분의 가정이 디지털 TV를 구매하는 대신 컨버터를 장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전문가들은 디지털방송 전환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2200만가구 중 절반 정도는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전체의 3분의 1 가량은 디지털 수신 기능이 있는 TV를 구매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