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한파로 꽁꽁언 여의도 정가] 밥자리부터 줄이고 후원금도 '품앗이'

22일 국회 인근의 한 유명 한정식집.한창 바쁠 점심 시간임에도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았다. 5~6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만 13개에 달해 지난해까지 의원과 정치인들로 붐볐던 식당이지만 손님이 있는 방은 2곳.

그나마 한 방은 가장 싼 메뉴를 시키고 40분 만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경기한파로 국회 인근 식당가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줄어든 후원금과 경기침체에 위축된 의원들이 식사약속부터 줄이고 있어서다. 일부 의원들은 쪼그라든 살림살이에 상대적으로 후원금 모금 사정이 좋은 의원으로부터 '품앗이'를 받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썰렁한 국회주변 식당

식당 주인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겼다며 울상이다. 한정식집 주인은 "작년 4월 총선까지 하루 4~5건 있던 정치인들의 식사모임이 꾸준히 감소해 이제는 이틀에 1건꼴에 불과하다"면서 "상대적으로 매출이 많은 저녁 술자리는 요즘엔 전무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일식집 주인은 "경기침체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해 10월부터 의원들의 식사모임이 하루 1~2건에서 일주일에 1~2건으로 줄었다"며 "점심모임보다 1인당 지출액이 최하 1만5000원 이상 많은 저녁모임은 일절 없다"고 말했다.

다른 고깃집 주인도 "고깃집의 특성상 지난해 중순까지 정치인들의 모임은 거의 저녁모임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낮모임으로 바뀌었다"면서 "저녁에는 식사와 술까지 1인당 4만~5만원 정도 쓰던 게 낮모임으로 바뀌면서 1인당 1만원으로 씀씀이가 줄었다"고 전했다. 정치인들의 모임이 많기로 유명한 한 중국집 지배인은 "여의도 식당가는 정치일정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 총선 이후 조금씩 줄어들던 의원들의 '밥자리'가 경기침체가 본격화된 지난해 9월 이후 급속도로 줄었다"고 했다.

이처럼 주고객이던 정치인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자 식당주인들도 비상이 걸렸다. 종업원 중 30%를 내보내는가 하면 정치뉴스를 꼼꼼히 챙기며 의원들과의 스킨십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한나라당사 인근의 식당주인은 "의원들에게 식당 좀 찾아달라고 전화를 돌리고 당사에 가서 음료수를 나눠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다른 일식집 주인은 "의원들이 화장실 갈 때 다른 의원이나 손님과 마주치지 않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등 서비스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줄어드는 후원금에 품앗이도

의원들은 경기침체에 '입법전쟁' 후유증으로 여론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데다 후원금도 줄어들어 식사약속부터 '구조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지역의 한나라당 재선의원은 "경기침체로 식사모임은 간단하게 하고 티타임을 늘렸다"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난해 초가을부터 저녁 약속을 잡아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재선의원은 "야당이 돼서인지 지난해 후원금이 전년도와 비교해 30%정도 줄었다"면서 "일식을 설렁탕으로 대신 하는 등 식사약속도 가능한 싼 식당으로 잡는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은 의원이 다른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넘기는 '후원금 품앗이'도 성행하고 있다. 친이(親李)직계인 A의원은 "후원금을 내겠다"는 문의가 오면 "모금액 한도가 다 찼다"며 다른 의원을 소개시켜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단체를 등에 업고 있어 사정이 넉넉한 노동계 출신 B의원은 같은 의원모임의 C의원에게 후원금을 돌렸으며 한나라당 중진 D의원도 여러 의원들에게 품앗이를 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경목/박진규/김평정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