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근의 史史로운 이야기] 기축년 노자기우도

이틀 뒤 오는 설날부터 기축년 소의 해가 시작된다. 설에는 세배와 함께 무난한 한해살이를 기원하는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 예절인데,작년에는 교수신문이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뽑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이 훌륭한 덕담거리가 됐다. "비갠 뒤의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처럼…." 이 말 한마디면 굳이 말을 보태지 않아도 상대방은 환하고 명징한 기운을 떠올리면서 금세 표정마저 넉넉해지는 것이었다. 말과 글보다는 이미지를 연상시켜 주는 것이 훨씬 강력한 의사 전달 수단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설에는 친지들의 마음에 그려줄 그림으로 어떤 것을 준비하면 좋을까. 한자문화권에서 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노자(老子)일 것이다. 혼자서 13권짜리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을 만든 일본의 국보급 석학 모로하시 데쓰지도 <공자 · 노자 · 석가 삼성회담(三聖會談)>의 세 성인 등장 장면에서 공자가 수레를,석가가 흰 코끼리(白象)을 타고 나오는데 노자는 푸른 소(靑牛)를 타고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노자는 주(周)에 오래 살았으나 국운이 쇠미해진 것을 보고 나라를 떠났다. 국경에 이르자 수비대장 윤희가 가르침을 청하므로 도덕경 5000여자를 써주고 떠났는데,아무도 그가 어디서 생을 마쳤는지 모른다. " <사기 노자한비열전>"(노자는) 주의 덕이 쇠퇴하자 푸른 소를 타고 서역으로 갔다(周德衰 乃乘靑牛車去 入大秦)." <열선전(列仙傳)>

이것이 소를 타고 국경을 나섰다는 유명한 기우출관(騎牛出關) 사건이다. 공자가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다는 공자문례(孔子問禮)와 함께 노자 생애의 2대 사건으로 치는 이 장면은 번잡한 세상을 버리고 소를 타고 은둔했다는 강렬한 도가적 상징성 때문에 후일 좋은 화재(畵材)가 됐고 마침내 노자기우출관도(圖)라는 장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사대부들은 기우도를 책상맡에 걸어두고 세상이 어지럽고 정의가 통용되지 않으면 물러나 지조를 지킨다는 은일(隱逸)과 여유의 기상을 길렀던 것이다. 이런 느림의 미학을 몸소 실천한 조선 초 선비가 있다. 이주도는 스스로 기우자(騎牛子)라 자호(自號)할 정도였는데,권근은 느릿느릿 기우행을 즐기는 친구의 여유와 자족을 이렇게 상찬하고 있다.

"사물을 휙휙 빠르게 보면 건성으로 보게 되고 찬찬히 더디 보면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말은 빠르고 소는 느린 동물이므로,소를 타는 것은 그 느림을 취하려 함이다(馬疾牛遲 騎牛欲其遲也). 나의 벗 이주도는 평해에 사는데,달 밝은 밤이면 매양 술병을 들고 소를 타고 산수지간에 노닌다. 그는 옛사람이 알지 못한 유람의 묘를 깨쳤다고 할 수 있으니,소 타는 즐거움을 누가 알까?" <양촌집 기우설(騎牛說)>

얼마전 일본 고이즈미 정부의 구조개혁을 이끌었던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가 "미국식 시장만능주의를 맹종한 결과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참회하고 전향을 선언해 화제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은 지금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대유행이다. '탐욕자본주의'를 고발하고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책들이 서점에 즐비하고,케인스경제학 고전이 대중의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다.

반면 우리 사회는 현 사태에 대한 면밀한 진단은 뒷전이고 일단 극복하고 보자는 대증요법이 우선이다. 어떻게든 모든 것을 위기 전으로 되돌려 놓으면 된다는 것일까? 10년 전 환란을 겪어낸 자신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이 땅에 빨리빨리 문화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다.

새해는 문제의 근본을 더 많이 생각하고 찬찬히 진면목을 따져 보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그런 기대를 담아 이번 설 덕담으로는 노자기우도 한 폭씩을 친지들의 마음에 그려주는 것이 어떨까?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