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다시 뜨는 이유] 모피아와 경제부처 역사

옛 재무부(MOF)출신…'마피아' 같다고 별명 붙여
재무부·기획원 '투톱' → 재경원 '원톱' → 재정부·금융위로
● 모피아란

'모피아'는 옛 재무부의 영문약자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와(Mafia)'의 합성어다. 인맥으로 똘똘 뭉쳐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경제 관료들의 행태가 마치 의리와 충성을 중시하는 조직폭력배 마피아와 같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관치금융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경제관료를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모피아의 범위는 크게 세 가지로 그릴 수 있다. 가장 좁게는 옛 재무부 이재국 및 그 후신인 재정경제원과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실(국) 출신 관료들을 지칭한다. 이른바 '금정(금융정책)라인'이다. 이들은 과거 관치금융 시절 은행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대출 및 여신관리 등 돈줄을 틀어쥔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역대 경제부총리와 장관 중 상당수가 금정라인 출신일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다. 다음으로는 옛 재무부 출신 관료 전체를 가리킨다. 핵심인 금정라인에 비해 파워는 약하지만 세제 국고 등 옛 재무부 소속 출신들 역시 무시못할 권한을 쥐었던 경제 관료들이었다.

넓게는 재무부와 경제기획원,두 부처를 통합한 재정경제원,금융감독위원회,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출신 관료들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이 세 가지 범주 가운데 현재 가장 널리 통용되는 정의는 '옛 재무부 출신 모피아'이다. 모피아 1세대로는 옛 재무부 이재국장 출신인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1974년 취임)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김 전 장관에 이어 이헌재 임창열 등 두 경제부총리가 2세대로 통한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과 윤증현 재정부 장관 내정자,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옛 재무부 출신 모피아'라는 기준에 맞춰보면 3세대 모피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모피아에 대한 정의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많다. 모피아란 말이 나온 배경이 됐던 '관치금융'이 사라진 지 오래이고 과거 재무부가 틀어쥐고 있던 금융 · 세제 등의 권한이 정부 조직개편을 통해 분산됐다는 점에서다.

이태명/차기현 기자 chihiro@hankyung.com


● 경제부처 역사재무부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만들어졌다. 당시 재무부는 예산과 세제 국고 금융 등의 정책기능을 모두 담당했다. 1955년에는 경제개발 및 산업정책 주무부처로 부흥부가 신설됐다.

박정희 정부는 196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부흥부에다 예산 기능을 합쳐 경제기획원을 출범시켰다. 예산편성권을 넘겨준 재무부는 반쪽짜리 재정 부처로 남게 됐다. 이후 34년 동안 경제 부처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쌍두마차 체제가 유지됐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해 재정경제원을 출범시켰다.
권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비판이 늘어나는 가운데 외환위기마저 터져 재정경제원이 수술대에 올랐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재경원에서 기획기능과 예산부문을 떼어내 기획예산처를 신설했다. 또 금융감독 기능을 분리해 금융감독위원회를 따로 만들었다.

경제정책 총괄 부처인 재정경제부에서 예산권이 떨어져나가자 다른 부처들에 대한 영향력이 현저히 줄었다. 정부 부처들 사이에서 정책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이명박 정부는 옛 재정경제부에 예산 기능을 합치고 금융정책을 떼어낸 기획재정부를 만들었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이 통합돼 금융위원회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