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근본적 혁신을 원하는가…끊임없이 의심하라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 '데카르트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주식시장에서 증권 거래가 가능한 이유는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식을 파는 사람은 시세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주식을 사는 사람은 오를 것으로 판단한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생각한다면,누가 팔고 누가 살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이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확실성에 기초해 삶을 설계할 때 어떤 재앙이 오는지 우리는 현재의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서 목격하고 있다. 과연 인간은 일체의 불확실성이 배제된 절대적 확실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데카르트는 이것이 가능하다는 명제를 증명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데카르트는 어떻게 절대적 지식을 증명했다고 주장할까. 그의 방식은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모든 믿음을 배제해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명석 판명한 개념 이외의 모든 것들을 배제해버리고 난 후에 남는 것만을 절대적 진리개념으로 수용하려는 전략이다. 이것이 바로 '방법론적 회의주의'의 핵심이다.

데카르트는 우선 외부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절대적인지를 검토 대상으로 삼는다. 나의 오감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과연 존재하는가를 의심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사막에서 신기루를 종종 본다. 밤에 잠 잘 때 꿈을 꾸기도 한다. 몸이 극도로 쇠약한 상황에선 환상을 보거나, 환청을 듣기도 한다. 감각적 경험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모두 의심해 볼 수 있다. 이 외부세계가 5분 전에 생성된 것임에도 불구하고,마치 오래 전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과학적 방식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들의 연대 수를 측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조차 어떤 악마적 존재가 나로 하여금 그런 식으로 믿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데카르트는 또한 내 자신의 몸도 사실은 남의 것인데 내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한다. 나의 육신도 물질적 이상인 절대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나의 몸이기 때문에 즉각적 인식이 가능하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나 이 역시 악마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만든 결과가 아니라고 반박할 근거가 없다.

끝으로 그는 우리가 보편적 진리라고 믿는 수학적 진리도 역시 잘못된 믿음의 결과일 수 있다고 의심한다. '3+2=5'라고 믿는 것은 사실 '3+2=7'인데 악마의 장난에 의해서 그렇게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악마가 할 수 없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에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없을까. 하루 종일 방구석에 앉아서 명상에 잠겨 있던 데카르트는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내가 현재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되면 '내가 의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의심한다'는 행위는 '사고한다'는 행위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를 절대적 확실성의 기초로 삼는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는 절대로 부정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절대적 확실성의 범주에 들어가는가. 신의 존재는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데카르트는 다시 자아로부터 출발한다. 나의 생각 속에 들어있는 신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나라는 인간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심지어 내일 주식 시세도 알 수 없는 유한한 지식을 가진 존재이다. 이렇게 유한하고 가변적 존재인 내가 완벽한 존재인 신의 개념을 내부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이 나로 하여금 자신의 개념을 가지도록 만들었음에 분명하다. 더군다나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그것은 자기 모순에 빠진다. 완전한 존재는 바로 그 본질적 의미에 의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세 철학자 안셀무스가 한 존재론적 증명의 연장선상에 있는 논증이다. 데카르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은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기에 존재한다는 식으로 증명을 이어나간다.

데카르트 철학의 의미는 무엇일까. 절대적 확실성의 출발점을 자아에서 발견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중세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비록 자신의 저서가 신학자들에게서 인정받기를 바랐지만 (당시 불온문서로 찍히면 금서목록에 들어가고 최악의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그는 철저한 이성주의자다. 데카르트는 절대적 지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그로부터 다른 지식들을 연역해 내려고 했다. 그는 모든 과학지식을 상대적 관점이 아니라, 절대적 토대 위에 정초시키려고 시도한 '토대주의자(foundationalist)'다. 그는 또 정신과 육체를 완전히 서로 다른 두 개의 실체로 구분한다. 비록 정신과 육체를 송과선(뇌의 한 부분)이라는 애매모호한 연결고리에 엮어두기는 하지만,양자간의 소통을 단절시킨 이원론자였다. 그는 '영혼불멸설'까지는 아니지만,인간의 육체가 소멸해도 정신이 반드시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데카르트가 신중심적 세계관에서 탈피해 인간에서 절대적 확실성의 기초를 발견한 것은 '상자 밖으로 나가서 사고(think out of box)'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신'이라는 상자 밖을 나가서 발견한 것이 다름 아닌 '근대의 자아'다. 뭔가 근본적인 혁신을 바란다면 남들이 다 그러려니 하고 믿는 것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혁신은 외부의 컨설팅이나 처방에 의존하기보다 문제의 본질 자체에 대한 진지한 자기탐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