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파나소닉도 대량 감원…日 '종신고용' 위기

불황에 엔高겹쳐…1만명이상 해고업체 속출
작년 말 디지털 카메라를 만드는 일본 캐논의 오이타 공장 정문에서는 해고 근로자 수십명과 경비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감산을 한다고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하면 어떻게 하나. 공장장을 만나게 해달라."(해고 근로자) "해고된 직원은 공장 안으로 한발짝도 들여보낼 수 없다. "(경비원) TV로 중계된 이 장면은 일본 기업의 종신고용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캐논은 1990년대 '10년 불황'에도 종신고용을 고수한 일본 기업의 자존심이다. 재계단체인 게이단렌 회장이기도 한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은 미국식 경영을 도입한 소니가 감원에 나설 때도 한명의 직원도 내보내지 않고 일본식 종신고용을 고집했던 경영자다. 그런 캐논마저 직원을 해고하는 모습은 일본 사회에 충격이었다.

일본식 경영의 최대 특징 중 하나인 종신고용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세계 동시 불황에 엔고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일본 기업들은 최근 대량 감원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일본 최대 가전업체인 파나소닉은 지난 4일 국내외에서 1만5000명의 직원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소니는 1만6000명,NEC는 2만명,히타치제작소는 70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은 캐논처럼 종신고용을 지키려고 버텨왔던 회사들마저 대량 해고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외에서 6000명의 근로자를 해고하는 도요타자동차의 경우가 그렇다. 도요타는 1998년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종신고용을 유지하는 한 도요타의 미래는 어둡다"며 신용등급을 낮출 때도 꿈쩍하지 않았었다.

이런 도요타마저 종신고용제를 포기하는 것은 실적 악화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최근 3개월 새 2008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 영업이익 전망을 6000억엔 흑자(작년 11월6일)→1500억엔 적자(12월22일)→4000억엔 적자(올해 1월30일) 등으로 세 번이나 하향 조정했다. 작년 9월 이후 25%나 올라간 엔화가치는 내노라하는 일본 기업들도 맥을 못추게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실업사태가 심각해지자 게이단렌 등에 해고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눈덩이 적자로 존폐의 기로에 선 기업들에 먹힐 리 없다.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 박사는 "지금 같은 불황은 기업들에 무조건 종신고용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