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항만르포] 야근 사라진 공단, 밤엔 암흑천지…일부선 '월6일 근무'

줄어든 수입 보충하려고 일용직 일자리까지 기웃
농장에 '생계형 원정'도
충남 서산의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유모씨(40)는 요즘 게임 중독을 호소하고 있다. 공장 휴업으로 집에만 있다 보니 생긴 증세다. 유씨는 "처음 휴업했을 때는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했지만,아무리 돌아다녀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 게임에 빠지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감산 및 휴업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각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의 생활 패턴까지 바뀌고 있다. 현대파워텍은 이달에 단 6일만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평일 잔업과 주말 특근을 없앤 것은 이미 수개월 전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완성차 납품이 크게 줄면서 재고 소진을 위해 휴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며 "처음 휴업할 땐 이 기회에 가족들과 동반 여행이라도 하려는 생각이 있었지만,지금은 하루빨리 일터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현대파워텍은 휴업 근무일에 대해선 통상 임금의 70%를 지급하고 있다. GM대우자동차 부평 2공장에서 2월 중 향후 가동되는 날은 오는 16일부터 단 4일 뿐이다. 나머지 날짜엔 공장 문을 닫고 집단 휴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신차 라세티 프리미어를 생산하는 덕분에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군산공장도 이달엔 공장 문을 10일만 열 방침이다.

이 회사의 한 직원은 "과거 대우차가 부도났을 때는 다른 회사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았기 때문에 일할 곳이 전혀 없지는 않았는데,지금은 모든 제조업체가 불황을 같이 겪는다는 게 문제"라며 "요즘 건설경기도 최악이어서 공사판 일용직도 구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주변에선 생계를 위해 농장 등지로 며칠씩 일하러 가는 직원도 있다"고 귀띔했다.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은 이달부터 야간 근무를 아예 폐지했다. 주 · 야간 맞교대하던 근로자들은 조별로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출근하고 있다. 2공장 관계자는 "일주일씩 쉴 때 뭘 해야 할지 아직 막막하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전 직원이 돌아가면서 2주씩 무급 휴가를 내는 방식으로 감산에 나서고 있다. 감원 대신 자발적인 임금 삭감을 결정한 것이다. 이미 휴가를 다녀온 직원이 전체 직원의 30%에 달한다. 청주공장 관계자는 "일자리를 지키려면 지갑이 얇아지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한편 학원에 다니면서 미래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교대 순번표가 바뀌면서 근무형태가 확 달라졌다. A철강업체는 4조 3교대로 돌리던 작업일정을 4조 2교대로 최근 전환했다. 하루 24시간 조업체제에서 16시간 체제로 변경된 데 따른 조정이다. 나흘마다 한 번씩 돌아오던 비번도 격일제로 바뀌었다.

다만 근무를 쉬는 날에도 출근해 '교육'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마냥 놀게 되면 월급이 깎이는 탓이다. 회사 측에서 교육이란 형식을 빌려 임금을 보전해 주고 있는 셈이다. A사 관계자는 "한창 일할 시간에 집단으로 교육을 받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반면 석유화학업계는 다시 공장을 정상화하면서 직원들의 얼굴 표정도 살아나고 있다. 국내 최대 나프타 분해시설(NCC)을 보유하고 있는 여천NCC는 최근 공장 가동률을 100%로 끌어올렸다.

회사 관계자는 "작년 11월 제3공장 가동을 중지하면서 가동률을 70% 낮췄을 때는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말할 수 없이 컸다"며 "공장이 정상화되니까 일할 때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

조재길/안재석/송형석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