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목타는 지구촌] 아르헨티나 곡창지대 20% 황무지로…중국은 국가비상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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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콩·밀값 고공행진 등 식량파동 조짐지구촌의 목이 타들어가고 있다. 중국 호주 중남미 등을 강타한 최악의 가뭄으로 곡물 파동에 따른 식량난과 애그플레이션(농산물발 물가 상승)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란 복합 위기에 빠진 글로벌 경제에 '물(水) 부도'(water bankruptcy)의 공포까지 엄습하는 모습이다.
'물 쇼크' 장기화땐 세계 경제·안보 위협
중국은 반세기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국가비상사태를 맞았다. 중국 최대 밀 생산지인 허난성을 비롯 허베이와 베이징 산시 안후이 등 12개 성과 시의 지난해 11월 이후 강수량은 평년의 20~50% 정도에 그치고 있다. '세계의 곡창'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도 1961년 이래 최악의 가뭄으로 곡물 생산이 급감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밀가루와 콩기름 세계 1위,옥수수 2위,밀 4위 수출국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체 곡물 재배면적의 15~20%가 가뭄 때문에 황무지로 변했다. 아르헨티나의 콩 생산은 지난해보다 20%가량 감소한 3700만t에 그칠 전망이다. 옥수수 수확은 45% 줄어 1200만t에 머물 것으로 보이며,밀 수확은 반토막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단체들은 "가뭄으로 경작지가 파괴되고 소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가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이달 안에 대규모 시위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멕시코에도 가뭄이 강타,멕시코시티에 물을 공급하는 상류 댐이 16년 만에 최저 수위로 떨어졌다. 멕시코 정부는 지난 주말 사흘 동안 급수를 제한,2000만명의 시민들이 급수차에 의지하고 있다.
주요 식량 수출국인 호주도 남부 남호주와 빅토리아주,뉴사우스웨일스(NSW)주 남쪽 등에서 사상 최악의 가뭄과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산불도 끊이지 않아 지난 7일 하루 새 빅토리아 등 3개 주에서 수십 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했다. 이번 산불로 8일 저녁(현지시간)까지 80여명이 불에 타 숨진 것으로 확인돼 호주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게 됐다. 산불로 전소된 가옥도 700여채를 넘었으며,최소한 20만ha의 삼림이 불에 탔다. 지금까지 최악의 산불은 1983년 빅토리아주에서 발생했으며 모두 75명의 희생자를 냈다.
당국의 진화작업에도 불구하고 산불은 열풍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어 폭우가 내리지 않는 한 당분간 진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말부터 빅토리아주 등에 몰아닥친 폭염과 가뭄으로 산불 피해가 확산된 것으로 소방당국은 분석했다.
이 같은 지구촌 가뭄 사태로 지난해 세계를 휩쓸었던 식량파동이 다시 불거질 조짐도 일고 있다. 전 세계 밀의 16%를 생산하는 중국 가뭄으로 국제 밀값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5일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3월 인도분 밀 선물값은 부셸당 5.62달러로 3.6%나 뛰었다. 2주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콩 선물 가격은 6일 부셸당 10.01달러로 사흘연속 상승세를 이어갔으며,옥수수도 부셸당 3.77달러로 강세를 나타냈다. 지구촌 '물 쇼크'는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세계 경제와 안보를 위협하는 '뇌관'이라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39억명이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 부족 사태 여파로 2025년까지 현재 미국과 인도의 연간 곡물 생산(전 세계 곡물 생산의 30%)만큼 곡물 생산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물 부족의 피해는 단순히 '먹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는 데도 반드시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바지 한 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은 대략 1만850ℓ다. 청바지 한 장을 만들려면 1ℓ짜리 생수병 1만850개 분량의 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엔 무려 38만ℓ의 물이 들어간다.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에서는 '물 부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과 경제성장 및 인구증가로 인한 수자원 수요 증가가 겹쳐 최악의 물 부족 사태가 발생,글로벌 경제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