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뿔나도 해머 들지않는 美의회

김홍열 워싱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너무 싱거웠다. 회의장 문은 걸어잠기지 않았으며,해머도 등장하지 않았다. 미국 상원이 현지 시간으로 9일 8382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을 본회의에 부치기로 결정하기까지를 지켜본 관전평이다. 상원은 지리하게 밀고 당긴 끝에 경기부양 법안을 도출했다. 부양 규모를 한때 9200억달러로 불리는가 싶더니 며칠 새 1000억달러 삭감했다. 창은 야당인 공화당이었고,방패는 여당인 민주당이었다. 공화당은 과다한 재정 지출은 적자를 키운다며 감세를 늘리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집권 8년 동안의 지나친 감세 정책이 경제 위기를 불렀다고 반박했다.

양측은 자신의 안이 수용되지 않으면 재정 위기,경제 위기가 곧 재앙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혀 타협점이 없는 듯했던 대치 국면에서 공화당 중도파 의원들이 협상에 나섰다. 민주당 지도부는 공화당 요구를 일부 받아들였다. 전체 부양 규모 중 감세 비율을 높이고 재정 지출은 줄였다. 양보한 민주당에는 더 큰 수확이 돌아왔다. 부양안을 본회의에 상정,표결에 부치려면 최소 찬성 60표가 필요했다. 상원 의석 100석 가운데 58석을 가진 민주당은 61표를 얻었다. 공화당에서 찬성 3표를 얻은 결과다. 하원에서 8190억달러의 경기 부양안이 통과될 때 공화당으로부터 단 한 표의 찬성도 얻지 못한 데 비하면 대단한 성과다.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다. 표 대결에서 진 공화당은 불만이 적지 않지만 다수결 원칙에 따라 깨끗이 승복했다.

경기 부양에 하루가 급한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무조건 공화당을 윽박지르지 않았다. 책상머리에 앉아 있기보다 국민들을 우군으로 만들었다. 표결을 앞두고 미국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찾아 국민들과 질의응답을 가지면서 경기 부양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호소했다. 공화당을 겨냥한 우회적 압박이었다.

지난 연말 · 연시 우리 국회는 여당이 문을 걸어잠그고,야당은 해머를 동원했다. 미 의회의 쟁점 법안 합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화와 설득과 타협의 기술을 더 배우지 않는 한 한국식 의회 민주주의는 언제 또 해머에 일격을 당해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