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중국산이라 못믿겠다고?
입력
수정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주저앉은 소'가 불법 도축돼 대량 유통됐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브루셀라병 검사도 거치지 않은 채 팔려나갔다고 하니 혹시라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소비자는 없을지 걱정이다. 특히 '주저앉은 소'로 인해 전국이 광우병 공포에 휩싸이고 촛불 시위까지 벌어졌던 게 바로 엊그제이고 보면 사욕에 눈이 먼 도축업자와 유통업자들의 후안무치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속이는 수입ㆍ유통업자가 더 문제
일벌백계로 상도덕 바로세워야
수입 식품의 원산지를 속인 사례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어느 수산업체는 중국산 냉동 조기를 '영광 굴비'로 둔갑시켰고 또 다른 수입업자는 중국산 고추를 '음성 고추'로 세탁해 유통시켰다. 관세청이 최근 2개월간 실시한 단속에서만 이런 식으로 원산지를 속인 수입 식품이 190억원어치나 적발됐다니 얼마나 많은 가짜 국산이 나돌고 있을지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이번 두 사건은 수입 · 유통업자들의 모럴 해저드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착잡하기 짝이 없다. 원산지를 둔갑시키는 것은 수입 식품의 품질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낮아 높은 값에 판매하기 힘든 때문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특히 중국산 제품의 경우 그런 경향이 강하다. 농 · 수산물 같은 식품류뿐 아니라 각종 공산품들까지도 원산지 표시나 안전 문제 등으로 툭하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로 인해 중국산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국인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며 폄하하는 경우까지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제품이 정말 욕을 먹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이 억지로 이 땅에 풀어놓는 게 아니라 우리가 수입해 들여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사겠다는데 팔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불량 제품이 범람하는 것 역시 수입업자들이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 중국산 중에서도 저가품을 더 선호하는 까닭이 크다. 중국 제품보다는 수입업자가 문제라는 이야기다. 원산지까지 속이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수입 물량이 크게 늘고 원산지 표시제도 시행 중이지만 막상 식당에서는 파는 곳을 찾기 어렵다. 한우나 호주산으로 속이는 경우가 흔하다는 뜻일 게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했던 사람들 중에는 바로 이런 점을 우려했던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또한 '주저앉은 소' 불법 유통과 마찬가지로 우리 상거래가 투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원산지가 어디인지, 몇 개월령 쇠고기인지 등을 정확하게 밝히기만 한다면 광우병(걸릴 가능성 자체가 거의 없지만)에 대한 우려도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먹기 싫은 사람은 먹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수입 · 유통업자들의 부도덕한 행태는 국산 제품에까지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어 더욱 문제다. 범람하는 가짜 영광 굴비는 진짜 영광 굴비의 신뢰도마저 떨어뜨려 가격이나 판매량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우로 둔갑하는 쇠고기가 많은 탓에 비싼 한우는 아예 먹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수입 식품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우리 내부의 문제임이 선명히 드러난다. 상도덕 회복만큼 시급한 게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수입업자와 유통업자들의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 또한 원산지를 속이는 행위,특히 먹거리를 갖고 장난하는 행위에 대해선 일벌백계로 다스려 상거래 질서 확립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중국 농 · 수산물이나 미국 소는 구박받을 대상이 아니다. 식량 문제 해결과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어야 한다. 수출하는 나라가 우리 내부의 상도덕 문제까지 책임 질 수는 없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다른 사람 눈의 티끌만 탓해선 안 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