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소련 강제착륙은 고장 때문… 중정 "북한 땅굴 선거에 활용해야"

1978년 외교문서 공개
외교통상부는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30년이 경과한 1978년 외교문서를 12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말의 외교 · 안보 · 정치 상황이 비교적 상세하게 담겨 있다.

◆전 ·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 의견정부가 1970년대 후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 ·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 문서에 따르면 76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주한미군 철수론을 제기하며 대한(對韓) 군사원조 삭감을 시사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그 대안으로 전 ·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또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 방침에 따른 공백을 우려해 F-16 전투기 구매를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최첨단 전투기였던 F-16 구입을 위해 우리 국방부가 지속적으로 미측에 구매를 요청,77년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에서 미측이 원칙적으로 판매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 의회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78년 우리 외교부가 미 의회 동향을 파악해 만든 자료에는 미 상하 양원에서 한국군이 F-16을 보유하면 동북아 군비경쟁을 야기할 것을 우려해 반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KAL기 소련 강제착륙

냉전 시절인 1978년 4월20일 대한항공(KAL) 707기는 소련 공군기의 공격을 받고 소련 영내에 강제 착륙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승객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의 원인은 기계 고장과 위치 오판으로 인한 항로 이탈로 확인됐다. 사건 발생 이후 소련에 억류됐다 풀려난 조종사 김창규 기장과 항법사 이모씨는 "항공기의 방향을 알려주는 '자이로 나침반'이 고장나 소련 영공을 침범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KAL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한 소련과 그 뒤를 이은 러시아가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사건에 대한 정확한 경위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북(北) 땅굴 선거에 적극활용

정부가 중앙정보부를 중심으로 1978년 10월 판문점 인근에서 발견된 제3땅굴을 선거에 활용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문서에 따르면 78년 10월27일 정부가 제3땅굴 발견 사실을 발표하기 열흘 전인 17일 중정에서 '판문점 제3땅굴 특별홍보대책 방안'관련 회의가 열렸다.

중정은 이날 회의에서 "총선 등을 전후한 국내 정국 안정에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땅굴을 78년 12월 총선에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정은 이어 "공식 발표 이후 국민의 격분을 발산시키기 위한 반공 안보단체에 의한 궐기대회를 개최해 대북 경각심을 고취시켜야 한다"면서 재향군인회,이북5도민회 등의 단체를 명시,"각계의 규탄성명 발표를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해외진출 막아라

정부는 해빙기인 1970년대 후반에도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을 막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북한이 1978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상주대표부를 설치할 당시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로비활동을 벌였다. 북한은 1977년 11월 FAO 회원국으로 가입한 후 로마에 상주대표부 설치를 추진했지만 조상호 당시 주이탈리아 대사는 이탈리아 외무성과 접촉,"북한이 대표부 설립시 주재 목적에 벗어나는 정치활동을 할 우려가 많고 대남 비난 등 선전활동을 전개할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하며 설치를 막았던 것으로 문서는 기록하고 있다.

구동회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