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멈춘 세상, 천국일까… 지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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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작가 사라마구, 신작소설 '죽음의 중지' 출간'다음 날,아무도 죽지 않았다. '
인간의 극단적인 상황을 섬뜩하게 보여주는 이야기
한 국가에 '최고'의 새해 선물이 도착했다. 1월1일 0시 이래로 전국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환희에 휩싸였고,국기를 내다 걸며 이 '축복'에 경의를 표했다. 총리는 불멸을 내려준 신에게 늘 감사 기도를 올리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 장의업계나 곧 숨이 넘어갈듯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환자들의 처치가 곤란해진 병원,사후 천국행과 지옥행을 설파하기 난감해진 종교계가 볼멘소리를 낼 뿐이다.
불로초를 찾아 헤맸던 진시황이 오매불망 꿈꿨을 법한 지상의 에덴동산,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지옥에 불과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86)가 신작 《죽음의 중지》(정영목 옮김,해냄)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극단적이고 어지럽다. 마침표를 아끼며 뻑뻑하게 전개되는 문장은 꽤 난해하지만 소설의 암담한 설정에 걸맞기도 하다. 사라마구는 죽음이 사라진 비현실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극단적 면모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노화는 진행되고 고통은 지속되기에 불사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뿐이다. 아무리 아파도 죽을 수 없고 아무리 지겨워도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돌파구로 자살을 시도한다 한들 번번이 실패로 그친다. 드디어 '지금은 살아 있지만 죽은 거고,죽었지만 산 것처럼 보이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영생에서 해방되기 위해 일종의 '고려장'을 고안해낸다. 여전히 죽음이 기능하고 있는 국경 너머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실어나르기 시작한 것.처음에는 비난 여론이 쇄도하지만,사망확인서에 고려장 대상자들의 사망 사유를 자살이라고 적는 계책이 나온 후에는 일말의 죄책감마저 사라진다.
'실용주의가 지휘봉을 잡고 악보에 적힌 것을 무시한 채,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보면,불명예의 논리가 늘 보여주듯이,결국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도 몇 걸음 더 내려가게 된다고 장담할 수 있다. '
7달 동안 '자체 휴가'를 냈던 죽음은 한 방송국에 편지를 보내 활동을 재개하면서 새로운 규칙을 제시한다. 앞으로는 사망 1주일 전 편지를 보내 사망 일시를 알려주겠다고 선언한다. 이 와중에도 비용을 지불하고 병든 가족을 고려장했던 사람들은 자비와 인내심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공짜로 치워버릴 수도 있었겠다는 '막장'같은 생각에 못내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사라마구는 잔인하고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서늘하게 드러낸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의 질긴 생존 능력을 고려한다면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니까.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일어날 것이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살아서 그것을 다 보지 못한다면,우리가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죽음을 피해가는 첼리스트가 나타나자 죽음은 당황한다. 사라마구는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죽음 여사,그런 일은 늘 일어납니다,예를 들어 우리 인간은 오랫동안 실망,실패,좌절을 겪어왔지요'라고 능청스럽게 죽음을 위로하기도 한다. 결국 죽음과 첼리스트 사이의 지루하고 모호한 탐색전이 벌어지며 소설은 급하게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소설 첫 문장과 포개지며 다 카포(da capo)를 이루는 마지막 문장은 독자들에게 현기증을 일으킨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