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中企지원 놓고 거세지는 논란] 산업기반 지키기 위해 전폭지원 불가피

'퍼주기 지원'으로 구조조정 퇴색 비판에
경기침체기에 기업 구조조정을 가장 강도 높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떤 자금지원책도 만들지 않고 가만히 놔두는 것이다. 은행들은 알아서 대출금을 회수하고 신규 자금도 주지 않을 것이고,부실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법정관리 신청이나 파산밖에는 없게 된다.

그러나 정부가 자금지원책을 세우는 순간 그 대책의 수위만큼 기업 구조조정은 요원해진다. 100개 부실 기업 중 90개가 자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원책이 만들어지면 구조조정 대상 기업 수는 100개에서 10개로 줄어드는 등식이 성립한다. 바로 이런 '역비례의 함수'가 '윤증현 · 진동수 경제팀'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상호 대립되는 두 과제를 동시에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자금 지원과 '구조조정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너무 많다.

일단 두 극단 사이에서 정부는 '전폭적인 지원'을 선택한 상태다. 모든 중소기업의 신용대출을 만기 연장하도록 했고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제공한 대출 보증도 23만7000개 기업의 34조원어치 전부를 만기 연장토록 했다. 게다가 수출기업 등에 대해서는 보증 비율을 100%로 늘려 '묻지마 대출'을 가능케 했고 보증 공급 규모도 작년 46조3000억원(39만9000개사)에서 올해 64조3000억원(55만개사)으로 늘리기로 했다. '보증 융단폭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수위다. 그 결과 구조조정의 폭은 크게 축소되게 됐다. 이번 자금 지원에서 제외되는 기업들이 구조조정 대상이다.

금융위원회는 18일 발표한 신용보증 가이드라인에서 보증 · 보험 사고 기업이나 대지급 채권을 회수 못한 기업,허위 자료 제출 기업은 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다. 만기 연장 불가 대상 기업과 파산 경험이 있는 기업,대출금을 빈번히 연체한 기업,은행연합회에 연체 기록이 있는 기업,사업장이 가압류된 기업 등은 신규 보증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다. 쉽게 말해 '현재 시점 기준으로 자금 부족이 현재화한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곧 '이미 부실화된 기업은 구조조정하되 나머지 기업은 정부가 책임지고 살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19일 발표하겠다고 한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 방안'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직후와 같이 강력하고,광범위하며,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간 차원의 인수 · 합병(M&A)이 보다 잘 일어날 수 있도록 구조조정 펀드에 대한 세제 지원을 부활하고 캠코가 금융회사 보유 부실 채권을 매입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아닌)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을 원칙으로 하되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논의할 것"이라며 "산업정책적 측면도 고려한 구조조정의 방향도 논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며 외환위기 당시처럼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가 살아났을 때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현재의 산업 기반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외환위기 때 무너진 산업 기반을 다시 일으키는 데 10년이 걸린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은 전폭적인 지원을 통한 산업 기반 고수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