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이렇게 돌파한다] 올해목표는 '생존'… 비상등 켠 기업들

최태원 SK 회장은 2월호 사보에서 올해 목표를 '생존'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악의 경우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도래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며 "항상 '데스 포인트'(death point · 생물의 생존 한계 온도)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영환경의 변화 상황을 감안해 두 달마다 사업계획을 새로 짤 것"을 주문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SK가 생존이라는 '비장한' 모토를 내놓은 것은 경영환경이 극도로 악화됐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지난해 4분기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삼성전자마저 1조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냈다. 삼성전자가 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은 분기 단위로 실적을 계산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지난 4분기는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은 불경기 타개를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정리하고 조직개편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기업들이 내놓은 구조조정 방안의 골자다.

◆낭비 요소를 잡아라


낭비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기업들의 첫번째 '미션'이다. 실적 악화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 하려면 새는 돈부터 막아야 한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올해 3조원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LG전자를 들 수 있다. 남용 부회장은 "LG전자가 부품과 서비스 구매에 사용하는 연간 비용이 8조7000억원에 달한다"며 "금융,법률,컨설팅 등 서비스 상품을 덜 이용하는 방법으로 전체 구매비용의 10%만 줄여도 87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LG전자는 비상경영 상황을 점검하는 태스크포스(TF) 조직인 '위기 전시상황실'(crisis war room)을 낭비 요소를 잡는 '암행어사 조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 조직에 주어진 임무는 △부문별 유휴 인력 재배치 △마케팅 예산 집행 효율화 등이다. 잉여인력이 있는 부서를 찾아 인력을 줄이고 낭비의 여지가 있는 마케팅 예산도 확 줄이겠다는 게 이 회사의 계획이다.

◆현장 중심으로 조직을 바꿔라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운 기업들도 많이 눈에 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임원 70%의 보직을 바꾸고 본사 인력 80%를 현장으로 내려보내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경영 환경이 바뀔 때마다 기민하게 전략을 수정할 수 있도록 편제를 바꿨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불황극복 키워드로'스피드(speed)'를 선택했다고 보면 된다"며 "조직의 모토도 '관리의 삼성'에서 '효율의 삼성'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현대 · 기아자동차도 최근 글로벌영업본부와 마케팅사업부를 신설하고 영업기획사업부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영업조직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매출 확대를 위해서는 영업과 마케팅 역량을 보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라


기업들의 올해 목표는 '영업이익'이 아닌 '시장점유율'이다. 이번 기회에 글로벌 경쟁업체들과의 격차를 벌려 경기 회복 이후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게 주요 기업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삼성전자는 평판 TV 2600만대와 휴대폰 2억대 이상 등 지난해보다 높은 판매 목표를 잡았다. 중국,인도 등 신흥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원화 약세로 인한 환율효과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큰 이익을 올리기는 어렵겠지만 글로벌 경쟁업체들과의 격차를 벌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들도 그동안 경쟁력 우위를 보인 소형차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강화해 얇아진 소비자들의 지갑을 연다는 목표을 세웠다. 미국,유럽 등 선진시장은 물론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 등 신흥시장개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베르나와 아반떼로 미국 시장을,i10과 i30로 서유럽 시장을 두드릴 예정이다. 기아차 역시 쏘울과 포르테를 앞세워 수출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다.

◆미래 먹거리를 찾아라


기업들의 투자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R&D만은 예외다. 경기 회복기가 찾아왔을 때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투자를 충분히 해 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R&D와 브랜드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장도 지난 17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정기총회에서 "신기술 개발과 관련된 R&D 투자는 줄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LED(발광다이오드),전기자동차용 전지,태양광 발전 등 친환경 사업에 R&D 예산을 집중,차세대 성장동력을 마련할 계획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