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봄] 읽는 맛이 다르네…3인3색 '散文'에 빠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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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무명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시인과 소설가의 산문집에서는 그들의 문학 내외적 사유를 엿볼 수 있다.
공지영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성석제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시인 강은교씨의 산문집에서는 시인다운 자세와 시 세계가 잘 드러나고,소설가 공지영씨의 산문집은 일상적이면서 유쾌하다. 소설가 성석제씨의 책은 그가 가려뽑은 명문장에 소설가의 사유를 덧붙여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시인 강은교씨의 산문집 《무명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큰나)의 '무명 시인'은 이름 없는 시인(無名)을 뜻하기도 하고 밝을명 자를 써서 무명(無明) 시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책에는 시인 자신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산문과 시에 관한 산문 등이 수록돼 있다. 강씨는 <필그림케이의 파일-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글에서 "깜깜한 어둠 속에 모든 것들은 입술을 굳게 닫고 앉아 있다. 그것들은 내가 입술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라면서 '어떻게 하면 저것들을 말하게 할까'라고 궁리한다. 강씨는 '마중물이 필요하다. 마중물은 펌프질할 때 맨 처음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을 말한다. 내가 던지고 싶은 물 한 바가지.그 한 바가지 물에 의해 보다 깊이 숨어 있던 지하의 물은 쏟아져 나온다'고 시작(詩作)의 과정을 비유한다.
소설가 공지영씨의 산문집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한겨레출판)에서는 사소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려는 공씨의 노력이 돋보인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는 기발한 제목의 글에서는 '대한민국 문단에서 악플 많이 달리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공씨 나름의 상처론이 펼쳐진다. 그는 장미란 선수의 어깨도 처음부터 그 무거운 걸 들어 올렸던 것은 아니잖냐면서 마음에도 근육이 있기 때문에 날마다 연습하면 어느 순간 역경을 벌떡 들어올리게 된다고 충고한다. 또 언젠가 섬진강변에서 은어 천렵을 벌였는데 은어가 많이 잡히지 않아 다들 양껏 먹기 힘들었지만 버들치 같은 눈을 한 시인이 결연하게 "이렇게 이쁜 것들을 어떻게 먹을 수 있니?"라고 말하며 자기 몫인 은어 세 마리를 집 연못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하지만 후에 공씨가 은어와 같이 먹으면 제격일 고추장을 싸 가지고 시인의 집을 방문해보니 이미 은어는 사라지고 없었다며 "두고 보자며 입맛을 다시던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긴가 보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창비)은 소설가 성석제씨가 온라인에서 '배달'했던 문학의 명문장과 성씨의 해설을 묶은 책이다. 박지원이나 이옥 등 조선시대 문장가부터 황순원 등 한국의 대표 작가들,박완서 등 원로 작가들과 박민규와 김연수 등 젊은 작가들의 문장을 소개했다.
체제공의 <관악산 유람기> 중에서 길이 험한 연주대에 올라가는 일을 만류하는 승려들에게 체제공이 "천하만사는 마음에 달렸을 뿐이네.마음은 장수요,기운은 졸개이니,장수가 가는데 졸개가 어찌 가지 않겠는가?"라고 한 말을 소개하면서,성씨는 "그런데 문제는 몸이군요. 그래도 몸이 가야 산에 가는 거지요. 뒤따라 기쁨을 누리는 것이 마음이라면 몸이 장수이겠습니까,마음이 장수일까요"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