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프로스트 vs 닉슨'] 속물과 난봉꾼의 배꼽잡는 한판 대결

"자네,저 여자와 꼭 결혼하게."(닉슨) "아 예,아름답죠."(프로스트) "모나코에 사니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거든."(닉슨)

론 하워드 감독의 '프로스트 vs 닉슨'의 도입부는 두 주인공의 성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닉슨은 돈과 결혼을 연관 짓는 속물이다. 프로스트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만난 여성을 사귀어 동행할 만큼 타고난 난봉꾼이다. 속물과 난봉꾼이 만난 셈이다. 이 영화는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과 예능프로그램 MC 데이빗 프로스트의 인터뷰 실화를 그린 드라마.사임 후 3년간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에 대해 침묵해온 닉슨은 소위 '딴따라' MC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민의 동정심을 얻어 정치적 재기를 꿈꾼다.

반면 한물 간 플레이보이 방송인인 프로스트는 닉슨에게서 워터게이트 사건에 직접 개입한 사실을 자백받고 대(對) 국민 사과를 받아내 중앙 방송사로 화려하게 복귀할 기회를 찾고 있다. 프로스트는 4회에 걸친 인터뷰를 계약하기 위해 닉슨의 별장을 방문한다. 닉슨은 프로스트에게 20만달러를 받는 대가로 인터뷰를 수락한다.

도입부는 난봉꾼이야말로 노회한 정치꾼과의 '인터뷰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프로스트는 전재산을 걸 모험에 처음 만난 여자와 동행할 만큼 사람 사귀는 기술이 뛰어나고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것은 스스로 긴장을 풀게 할 뿐더러 상대방 닉슨의 경계심마저 무너뜨린다. 프로스트는 여자의 마음을 훔치듯,닉슨의 마음도 얻어낸다. 프로스트가 닉슨을 만나는 장면은 마치 정신분석의가 환자의 내적 고뇌를 듣기 위해 애정과 신뢰를 쌓는 데 공들이는 모습과 흡사하다. 닉슨이 마지막 순간에 건넨 말에는 프로스트의 삶과 매력에 대한 동경이 스며 있다.

"자네와 나는 직업을 바꿨어야 옳았어.자네처럼 파티를 즐기고,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정치가가 되고,나처럼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사람이 인터뷰어가 됐어야 했는데…."

딱딱해지기 쉬운 정치영화를 이처럼 재치있고 유머러스하게 그린 작품은 드물다. 닉슨과 프로스트가 사석에서 나눈 대화들은 끊임없이 웃음을 준다. 끈 달린 구두를 신어야 남자로서 무게감을 지닌다고 생각했던 닉슨에게 프로스트가 자신의 끈 없는 이탈리아제 수제화를 선물하거나,인터뷰 비용 후원업체를 모집할 때 'IBM' 등 유명 대기업은 외면하고 개밥 제조사인 '알포'가 나서는 모습 등도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복잡한 이야기가 대중성 있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12세 이상.3월5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