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경제법안이 흥정거리인가

유창재 정치부 기자 yoocool@hankyung.com
"국회 운영과 관련해서 정책위의장이 결정할 수 있는 건 없다. "

박병석 민주당 정책위의장 측이 지난 23일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분야별 여야정 협의체' 구성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내놓은 변이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법안들은 정책적 이견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에서 빚어진 것이어서 정책위의장끼리 풀 수 없다는 얘기다. 임 의장의 제안은 각당의 상임위 간사들과 정책위의장단,그리고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 쟁점법안에 대한 이견을 좁혀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민주당엔 역시 정책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중요했던 것 같다. 이런 민주당의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은 쇠망치까지 등장했던 국회 입법전쟁이 '휴전'에 돌입했던 지난달 중순 양당 정책위의장에게 정책 토론회를 제안한 적이 있다. 도대체 어떤 법안의 어떤 내용 때문에 국회에 폭력까지 등장했는지 국민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양당이 차분하게 마주 앉아 접점을 찾아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박 의장 측은 "법안을 정책적으로 토론하는 건 한나라당의 '프레임'에 들어가는 것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기자가 내심 민주당이 임 의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바랐던 건 2월 국회에서 만큼은 '정치 흥정'이 아닌 '정책 토론'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야는 정책의 세세한 내용도 모르는 원내대표들끼리 모여앉아 시장통에서나 볼 수 있는 흥정으로 합의서를 만들어내게 됐다.

벌써부터 징조도 보인다. 박종희 한나라당 정무위 간사는 이달 초 금산분리 완화 법안과 관련,"산업자본의 은행 지분한도를 10%가 아닌 8% 정도로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장 당내 정책통들 사이에서 "정부가 아예 처음부터 20~30% 정도로 법안을 만들어왔다면 10% 정도는 지키지 않았겠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한 초선의원은 최근 "지난 연말 예산심사를 하는데 한 사업에 대해 여야가 100억원과 50억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더니 결국 '75억원으로 하지 뭐'라며 통과시키더라"며 "그동안 법안이나 예산이 이런 흥정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했다. 국민의 정치혐오증이 나날이 심화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