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잡-창업은 일자리 보고(上)] '청년 정주영' 1명이 1만명 먹여 살린다

실업자 400만명 시대…일자리 만들기 시급
생계창업보다 제조업 기반기술창업이 효과적

경기 부천공단에서 반도체를 이용한 직류(DC) 방식의 전기용접기를 제조하는 아세아웰딩.외환위기로 부도 공포가 한창이던 1998년 2월 설립돼 2002년 이후 연간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국내 시장점유율(30%) 1위를 지키고 있는 회사다.

이 회사의 첫 작업장은 다름아닌 황종성 대표(47)의 자택 안방이었다. 이른바 '골방 창업'이었다. 당시 직원이라야 황 대표와 아내 등 고작 2명.외환위기의 열악한 상황에서 황 대표가 과감히 창업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새로운 기술을 믿은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교류(AC) 전기용접기는 크고 무거워 작업하기에 불편했다. 용접기 회사에 근무했던 황 대표는 반도체를 활용해 부피를 5분의 1로 줄여 휴대하기에 간편한 직류 방식의 전기용접기를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국내 용접기 시장의 판도까지 뒤바꾼 이 회사 제품은 일본 러시아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종업원 수도 10년 만에 60여명으로 불어났다. 경기 침체 한파로 모두가 움츠러들 때 과감히 승부수를 던진 한 청년의 패기가 기대 이상의 고용 창출을 가져온 성공 사례다.

실질 실업자 400만명 시대를 맞아 창업이 현실적인 일자리 창출의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동력은 결국 '청년 정주영'에서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 임금 삭감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등의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잡 셰어링만으로는 1년을 버티기 힘들다"며 "10년 전 벤처 창업붐을 통해 실업문제가 빠른 속도로 해소됐듯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고용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기술창업'은 성공하기는 어려워도 한번 대박이 나면 고용효과가 크다. 그런 만큼 음식점 도소매업 등 '생계형 창업'보다 기술창업을 권유하는 전문가가 많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숙박 · 음식업 및 도소매업의 기업당 종사자 수는 창업주 본인을 포함해 평균 2.51~2.61명(2006년 기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술형 제조업은 5.73명으로 2배가 넘는다. 회사 설립 10년 만에 2600여명이 넘는 조직을 갖춘 NHN은 기술창업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창업 후 5년간 생존율도 생계형(30%)보다는 기술형(38%)이 더 높다. 이는 생계형 창업이 주로 음식점 도소매업 등 이미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인 반면 기술형 창업은 주로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종전에 없던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2개월 새 42만명의 자영업자가 폐업 또는 도산했다는 통계청 발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전반적인 창업이 감소세를 보여 고용시장 전망은 밝지 않다. 실제 제조업 법인의 경우 2007년에는 1만396개 업체가 창업했으나 작년에는 1만128개로 2.5%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1월 1016개였던 제조업 신설 법인은 올 1월 882개로 13.2%나 줄었다.

창업이 줄고 기업이 망하면서 실직자가 넘쳐나고 있다.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중기청도 이 같은 점을 감안,창업 관련 예산을 대폭 확충하는 한편 창업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기술창업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홍석우 중기청장은 "가장 효과적인 일자리 창출은 창업"이라며 "특히 미래 성장동력을 구축하기 위한 기술창업을 촉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대학가에 '청년 정주영'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대학생들의 창업 불씨가 피어나고 있어 희망을 갖게 한다. 대학 졸업생(10개월 이내 졸업예정자 포함)을 대상으로 창업을 돕기 위해 올해 신설한 '예비기술창업자 육성기술창업사업'에도 일부 대학에선 신청자가 30~40명씩 몰려들고 있다. 운영기관인 창업진흥원의 성승호 팀장은 "아직 신청 접수가 끝나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기술창업을 하겠다는 대학생들의 의지가 넘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례로 컴퓨터 바탕화면에 시계 · 날씨 정보 등을 제공하는 '위젯' 프로그램의 원천 기술을 보유한 위자드웍스(대표 표철민)도 대학생 기술창업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표철민 대표는 2006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 때 대학 창업보육센터 내 3평짜리 사무실에서 회사를 창업,지난해 5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2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초기 4명이던 직원도 16명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도전의식 못지않게 '준비된 창업'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창업이라고 해서 경영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회계 인사관리 등 경영 자체도 하나의 기술이라고 생각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한국경제ㆍ노동부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