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잡-창업은 일자리 보고(中)] "기술 없으니 식당이나 한다고?"…모르면 시작도 말라

성공창업 3가지 키워드
"자살해야 겠다는 생각을 열 번쯤 했습니다. 그렇지만 더 잃을 게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죽기살기로 하니까 기회가 오더군요. "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창업에 뛰어들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별 생각 없이 퇴직금을 갖고 식당을 차리면 백 번 창업해도 백 번 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을 잃거나 퇴직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창업이다. 그렇지만 창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게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바닥에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과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실패할 공산이 크다는 게 외환위기 직후 창업해 수십억~수백억원 규모의 회사로 키운 창업자들의 조언이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시스템 공조업체인 채호시스템의 엄기춘 사장(41).LG전자 대리점 직원으로 일하던 그는 외환위기의 여진이 남아있던 1999년 6월 직장을 과감히 때려치웠다. 그리곤 남양주 오남읍 일대에 또 다른 LG전자 대리점을 차리면서 사업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엄 사장은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곰곰이 생각해보니 위기가 인생 최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결단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도전해야지,본인 스스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집을 담보로한 대출과 LG전자 본사에서 제공하는 대출 등 4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현재 운영 중인 채호시스템을 작년 말 기준 매출 40억원짜리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엄 사장과 같은 해에 자본금 3000만원으로 철강 유통회사인 금하스틸을 세워 작년 매출액 650억원 회사로 키워낸 하재환 사장(40)의 얘기도 비슷하다. 하 사장은 "다른 철강 유통회사에 다니면서 관련 정보를 줄줄이 꿰고 있는 상황에서 외환위기가 닥치자 과감히 창업을 결심했다"며 "'이거면 되겠다. 최소한 죽지는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제지유통업체인 가나페이퍼를 1998년 설립한 이병훈 사장(48)도 절박한 심정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다. 그는 당시 외환위기를 넘지 못하고 부도를 낸 중견 제지유통업체의 영업사원이었다. 회사가 부도를 낸 이후 사실상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오기가 치솟았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마당에 뭐가 두려우랴 싶었다. 그래서 가나페이퍼를 세웠다. 작년 매출액은 50억원으로 커졌다. 거래처도 400여곳에 달한다. 이들 3명의 사장들은 퇴직 이후 창업자들이 창업 초기에 겪게 되는 경영상 어려움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성공의 '제1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엄 사장의 사례를 살펴보자.엄 사장에게는 2003년 첫 위기가 찾아왔다. 창업 이후 계속 매장을 확대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다가 이 무렵 갑자기 전자제품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경영환경이 급변한 것.이 같은 상황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던 대가는 컸다.

"2002년 말에 대량으로 구매했던 PDP텔레비전 가격이 8개월 동안 최대 80% 이상 하락했어요. 헐값에 팔지도 못하겠고 죽을 노릇이었죠.여기에 2001년 매장을 450㎡ 규모로 확장하면서 비싼 값에 임대계약을 한 것도 자금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

엄 사장은 결국 점포주와 협의해 임대계약을 중도에 해지했다. 대신 남양주 금곡지역 대지를 지인으로부터 빌려 조립식 매장을 마련해 급한 불을 껐다. 업종도 시스템공조 설치업으로 바꿨다. 당시 이 과정을 지켜봤던 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창업자들이 창업 초기 고생했던 게 아까워 위기가 왔을 때 미적거리다가 부도를 내는 경우가 많다"며 "엄 사장은 자산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빠른 시일 내에 업종을 변경한 게 성공의 단초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최근 경기침체를 계기로 창업에 나서려는 퇴직자들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뭘까. 이들은 "반드시 자신이 가장 잘 알고,잘 할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하라"고 입을 모았다.

이 사장은 "창업하려는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영업 노하우가 없으면 창업은 무리"라며 "본인의 영업력과 가장 잘 할 수 있는 업종을 정확히 파악한 뒤 창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 사장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쌓은 인간관계를 사업에 보탬이 되도록 잘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 사장은 심지어 "식당 일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창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만큼 노하우 없는 창업이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는 "캐나다는 식당 경력 5년 이상이 된 사람만 영업허가를 내줘 식당 창업이 실패할 확률이 낮다"며 "반도체 만들던 사람이 무턱대고 식당 차리면 당연히 망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엄 사장과 하 사장은 창업 시기와 관련,"지금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 사장은 "경기가 좋건,나쁘건 시기를 잘 이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위기일수록 기회도 더 많은 법"이라고 덧붙였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