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투자가 구호만으로 안되는 이유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사내유보금 즉시 현금화 어려워
출총제 폐지 등 제도적 뒷받침을
케인스 경의 지적에 따르면 투자는 기업가의 동물적 본능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서 동물적 본능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직관이라기보다는 무질서하고 즉흥적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 불안정성이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업 투자의 변동성 내지는 변덕성이 그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기업투자는 매우 예민하고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 경제가 안 좋을 것 같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꾀어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그러기에 기업투자에 대해서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채찍을 드는 것이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당근 또한 필요하다. 채찍에 의해 움직이는 투자는 '눈 가리고 아웅'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인센티브를 통해 움직이는 투자는 실제적인 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최근 국회에서 논의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금산분리완화를 둘러싼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바 있다. 야당의 대기업집단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그대로였고 심지어 지난 정부 시절 이러한 제도의 폐지 내지는 완화에 찬성했던 의원들조차 이제 야당이 되자 입장을 바꿔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논의는 겉돌고 있다. 출총제는 폐지냐 유지냐 둘 중 하나에 대한 원포인트 접근이 필요한데도 제도 보완을 거론하면서 더 무거운 제도를 추가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가 무성하다.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없는 유일한 규제이자 사전적이고 선별적이며 누더기가 돼버린 출총제 하나 폐지하는 데도 논의가 이토록 힘드니 다른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현재 세계 모든 국가에서 은행소유지분은 10% 혹은 그 이상까지 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자본의 은행소유지분을 전 세계 국가들의 하한선 수준인 10%까지만 상향조정하자는 금산분리완화 방안이 정부에 의해 제시됐는데 이 정책이 '재벌에 은행을 주는' 정책이라고 폄하되는 모습에서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기업의 사내유보금이나 현금성자산을 투자 혹은 고용유지에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사정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2008년 9월 말 기준으로 상장사 사내유보는 393조원에 달하는데 실제로 이 항목에 해당하는 자산은 설비투자나 지분투자자산 등의 형태로 바뀌어 있어서 즉시 현금화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금성 자산은 좀 나은 편이기는 하다. 현금성 자산은 대개 보통예금이나 만기 3개월 이내의 머니마켓펀드(MMF) 등의 금융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그 규모는 약 71조원으로서 전체 사내유보금의 18% 정도다. 그런데 이 자금은 대부분 기업이 원재료나 부품구입 재고관리 등을 위한 운전자금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잠깐 여유가 생길 때 초단기로 운용한 후 금방 운전자금으로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 위기 국면에서 투자 유도는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주식가격이 하락할 것 같은 상황에서 자금에 여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식을 사라고 권유할 수는 없는 것처럼 기업에 자금 여유가 있으니 투자나 고용에 돈을 쓰라고 지적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보다는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주는 동시에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공공사업 등에 민자를 최대한 유치하는 방법 등을 사용해 투자와 고용유지를 도모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다. 말은 목이 말라야 물을 마신다. 기업 투자 유도 문제에 대해 좀 더 종합적이고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