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잡] 민노총 잇단 탈퇴…고용창출 앞장…"노조가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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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노조 고비용 구조를 깨라 ● '투쟁보다 실용'택한 노조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배 한 척 수주하지 못했습니다. 선박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도 고통분담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용자의 경영 설명회가 아니다. 지난달 18일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이 대의원들을 모아놓고 고통분담에 나설 것을 설득하면서 한 말이다. 최근 들어 노동운동의 틀이 바뀌고 있다. 현실을 직시해 '권력' 대신 '실리'를 선택하는 노조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운동도 고용 친화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한때 투쟁만능주의에 빠졌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도부의 리더십과 회사 측의 신뢰경영을 바탕으로 15년간 무분규 타결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중 노사는 4일에도 울산 본사 체육관에서 민계식 부회장과 최길선 사장,오 노조위원장 등 임직원 5000여명과 이영희 노동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공동선언 실천과 글로벌 위기극복을 위한 전 사원 결의대회'를 가졌다. 노사는 이날 결의대회에서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위기를 인식,노사가 일치단결해 회사의 지속적 성장과 국가경제회생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기업과 국가경제가 살아나야 고용도 안정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다짐이다.
현대중 노조는 이에 앞서 올 임금협상을 회사 측에 아예 위임해 버렸다. 이 대가로 현대중 노조는 상당한 것을 얻었다.
2011년까지 직원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고용안정협약'을 사측과 체결한 것.요즘처럼 냉엄한 시기에 사측이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고 보장한 만큼 조합원들은 해고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현대중 노조만이 아니다. 노사갈등을 야기하던 노조들이 민주노총의 투쟁노선에 반발,민주노총을 탈퇴하거나 독자노선을 걷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강경투쟁을 일삼던 인천지하철 노조는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하기 위한 찬반투표를 오는 9,10일 이틀간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키로 했다.
이성희 인천지하철 노조위원장은 "민주노총의 투쟁적 노동운동은 조합원들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있다"며 "이젠 실리주의 노동운동이 필요한 것 같아 결별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운동의 혁신적 흐름은 강성노조가 포진된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차 노조 현장조직 게시판에는 '파업 일변도의 노사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하자'는 자성의 글이 잇달아 올라 오고 있을 정도다. 세상이 바뀐 만큼 변화에 동참하자는 촉구의 글이다.
위기감을 느낀 금속노조는 임금협상을 위임한 현대중 노조를 비난하는 포스터 5만4150부를 만들어 전국 산하 노조에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의 고통분담 분위기는 산업현장의 대세로 굳어가는 형국이다.
지난달 9일 서울시 5개 공기업 노사화합 선언에 동참했던 서울메트로 노조는 6일 조합비 가운데 1억원가량을 봉사기금으로 내놓는 방안을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상정한다.
정연수 서울메트로 노조위원장은 "앞으로 노조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며 "기존 노동운동에 시민봉사와 공공봉사 개념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쟁과 대립의 노사문화가 청산되고 복지와 봉사가 노동운동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얘기다.
영진약품 노조도 상생의 정신으로 '윈-윈전략'을 택한 대표적 케이스다. 회사 측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27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경영진 임금의 30%를 반납키로 결정했다.
노조도 즉각 화답했다. 올 임단협 교섭을 경영이 정상화하되 이익을 낼 때까지 유보하는 등 경영위기 극복에 동참키로 했다.
2004년 64일간의 파업을 벌인 뒤 2006년 민주노총을 탈퇴한 코오롱 노조의 김홍렬 위원장이 최근 해외영업전선에 나선 것도 파격적인 변화의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해외영업사원들과 직접 거래처를 찾아가 영업지원을 했다. 이런 상생의 분위기는 최근 들어 전국 산업현장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54개 사업장 노조가 무파업 또는 임금동결을 선언하거나 교섭을 회사 측에 위임한 상태다. 한국경제신문의 '밀리언 잡(100만 일자리 창출)' 자문위원인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대차 노조처럼 일은 적게 하면서 임금을 깎을 수 없다거나 더 달라는 식으로 나오는 노조는 고용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경제위기로 기업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려면 노조의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김동욱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