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가격 인상은 금요 단골뉴스

김진수 생활경제부 기자 true@hankyung.com
금요일이면 대개 긴장이 다소 풀어지게 마련이지만 식음료 담당 기자들은 거꾸로 더 바빠진다. 몇 달 전부터 금요일마다 가격인상 발표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2월 마지막 주 금요일(27일) 한 주류업체가 위스키 가격을 9% 올린다는 보로자료를 보내왔다. 인상 이유를 듣고서 바로 다른 업체에도 전화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비슷한 비율로 가격을 올린다고 고백했다.

지난 금요일엔 설탕값 인상 발표가 나왔다. 위스키와 마찬가지로 다른 제당업체들도 가격을 올리려고 들썩거리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에 앞서 소주 밀가루 우유 등 주요 생필품 가격 인상도 죄다 금요일에 집중됐다. 반면 CEO(최고경영자)와 관련된 홍보행사나 해외 수주,실적 개선 같은 좋은 소식은 최대한 금요일을 피한다. 주중에 그토록 많던 보도자료가 금요일만 되면 뚝 끊어진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가능하면 안 좋은 소식은 덜 알리고 자랑거리는 크게 홍보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주중에 잘못 알렸다가 '집중타'를 맞을까 겁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물론 식음료 분야만의 얘기가 아니다. 증권가에선 경영실적이 나빠진 기업들이 금요일 오후 늦게 실적 공시를 쏟아낸다. 경영진의 횡령,배임 같은 대형 악재는 금요일 공시의 단골 메뉴다. 금요일 장 마감 이후,특히 야간에 내놓는 '올빼미 공시'는 악재를 희석시키는 꼼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래서 기업 홍보담당자들은 농반진반으로 "PR(피알)이란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홍보전략 측면에서야 나쁜 소식을 꼭 알려야 한다면 사실상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만한 날도 없다. 그냥 쉬고 싶거나 놀러갈 계획 잡느라 바쁜 소비자들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매번 도둑고양이처럼 쉬쉬하며 덮고 넘어가는 게 능사일 수는 없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면 그 이유를 주중에 밝혀 소비자들의 양해를 구하고,실적 악화가 부득이했다면 주중에 그 원인을 설명해 주주들을 설득시키는 게 훨씬 당당해 보인다. 악재가 터졌을 때 감추기에 급급한 기업과,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충실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기업이 있다면 어떤 제품이나 주식을 살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소비자들도 용기있는 기업은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