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티미문 사하라사막‥태초의 적막 깨고 피어난 '사막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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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서 걷자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사실 누군가가 먼저 걷자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2m가 넘는 단봉낙타 등에 올라 호기롭게 '전진 앞으로'를 외친 지 한시간이 넘었으니 그만하면 꽤 많이 버텼다. 디딜 데가 없어 하릴없이 늘어뜨린 두 다리는 고관절이 빠진 것 같이 아파 힘을 줄 수도 없는 지경이다. 종아리 쪽은 벌써 감각이 무뎌졌다. 불에 데인 듯 쓰라린 엉덩이는 안장과 함께 자꾸 뒤로 밀려 모랫바닥으로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다.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고 엉거주춤 엎드리다시피한 모양새가 불편하고도 우스꽝스러워 보일 게 틀림없다. 머리에 단단히 돌려 마무리한 터번까지 풀어져 약한 바람에도 성가시게 흩날린다. 이래저래 멈춰서서 무슨 조치든 취해야 할 상황이다. 낙타도 힘이 드는지 대놓고 투정을 부린다. 혀를 옆으로 길게 빼물고 연신 풀풀거리며 허연 게거품을 내뱉는다. 자신의 네 발이 없이는 이 사막 한복판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될테니 좀 쉬어가는 게 어떻냐며 눈을 부라린다.
사하라의 모래둔덕과 낙타북아프리카 알제리 사하라 중심의 오아시스 마을인 티미문.수도 알제에서부터 1200㎞ 남쪽,사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 풍경을 자랑한다는 티미문에서의 사막 사파리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악명높은 모래폭풍도 살인적인 땡볕도 아니었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낙타타기'에서 비롯된 사소한 육체적 불편함이었다. 그렇다고 낙타 등에서 내려 무작정 걸을 수는 없는 일.간밤에 눈이 내린 듯 소금알갱이가 하얗게 드러난 소금평원과 그 소금평원보다 조금 무른 지대를 지나,이제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고운 모래의 사구지역을 통과해야하기 때문이다. 에르그(Erg)라고 하는 이 사구지역은 아프리카 대륙의 3분의 1인 사하라 사막에서도 20%를 넘지 않는,그야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바로 그 사하라 사막에 해당한다.
그림책이나 사진에서만 접했던 사하라의 사구풍경은 확실히 시선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다.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모양새의 모래둔덕들이 파란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다. 무한반복되는 물결무늬 패턴을 사방에서 약간씩 비틀어 놓은 것이라고 할까. 높지 않은 모래둔덕들은 황금빛으로 찬란하고,반대편 그늘진 곳마다 검은 그림자가 깊게 각을 세우며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점 구름 없이 새파란 하늘은 4차원의 비현실적인 공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일렁이는 모래둔덕에는 정해진 길은 물론 누군가 앞서 지나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노련한 베르베르족 낙타몰이꾼이 아니라면 길을 잃고 헤맬 게 틀림없다.
낙타체험 … 지프투어 … 야생의 사막 드라이브낙타몰이꾼이 갑자기 앞쪽 모래둔덕 꼭대기로 뛰어간다. 반대편은 족히 두길은 됨직한 급경사.모르고 전진했다가는 낙타는 물론 낙타에 탄 사람도 굴러떨어질 판이다. 낙타몰이꾼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둔덕으로의 우회를 위해 낙타머리를 돌린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 낙타 등 위에서는 언제나 떨어질 위험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낙타는 한쪽의 앞 뒤 두 발을 동시에 떼는 형태로 걷기 때문이 흔들림이 심한 편이다. 경사진 곳에서는 그 흔들림이 무슨 로데오 경기 수준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떨어지기 십상이다.
사구지역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한그루도 보이지 않던 사막식물 '아가야'가 눈에 띈다. 가까운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증거다. 1차 목적지로 잡은 오아시스,탈라 마을이 지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멀리 군데군데 사구에 묻힌 듯한 종려나무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낙타 등위에서 시달리던 몸과 마음에 아연 생기가 감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란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한 말이 그토록 가슴깊이 와닿을 수가 없다.
오아시스 마을로 향하는 지프사하라 사막과 오아시스를 체험하는 또다른 방법은 4륜구동 지프차를 타고 달리는 것이다. 고운 모래의 사구,황무지 또는 자갈과 암석평원 등 다양한 모습의 사하라를 속속들이 구경하기에 지프만한 것도 없다. 지프는 낙타보다 빠르고 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목적지는 이그제르.티미문을 벗어나 왕복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던 지프가 왼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제법 굵은 자갈이 보이는 황무지 사막으로 접어든 지프는 낭떠러지 끝에서 숨을 고른다. 낭떠러지 아래 쪽으로 빽빽한 종려나무숲과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왼편은 하얀 소금평원,멀리 뒤로는 아직 풍화가 덜 된 낮은 봉우리 셋이 나란하다.
이그제르 마을 입구의 커다란 동굴이 발길을 붙든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온도 변화가 없다는 동굴이다. 한여름에는 바깥 기온이 60도까지 치솟지만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동굴 안은 낮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활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온이 치솟으면 마을 사람 전체가 이 동굴에서 오수를 즐긴다고 한다. 한 할아버지가 동굴 입구에서 파는 조개화석은 이 일대가 바닷속이었다는 증거다. 마을 안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아주 좁아 갑갑하다. 골목길이 좁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막생활의 지혜가 녹아 있다. 한낮의 직사광선을 최대한 막아 그늘이 지는 부분을 넓히려는 목적이 첫째다. 모래바람을 피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사하라의 모래바람은 최고 시속 120㎞에 달할 정도로 거칠다. 모래바람이 휘몰아칠 때의 최대 가시거리는 보통 20m 이내라고 한다. 골목이 좁아야만 이 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을 꼭대기의 부서진 성채로 향한다. 남부 사하라의 마을에는 모두 이런 형태의 성채가 있는데 이 지역에만 500개를 헤아린다고 한다. 씨족공동체를 형성했던 성채 마을들은 서로 치고받으며 싸움을 꽤 했던 것 같다. 척박한 사막에서 물을 구하고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처지이니 남이 만들어놓은 것을 빼앗는 게 더 쉬웠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지역이 이슬람 세력에 장악되고부터 성채는 폐허가 돼버렸다. 다만 일부 동굴 같은 곳은 대추야자를 저장하는 창고로 사용한다고 한다.
종려나무로 기둥을 삼고 붉은 황토로 벽과 지붕을 마감한 마을의 집에는 물이 독약이다. 비가 많이 오면 황토벽체나 지붕이 허물어져버린다. 2004년 16시간 동안 75㎜의 비가 내렸을 때 마을의 집이 거의 모두 쓸려 내려갔다고 한다. 유명한 오아시스 도시 가르다이아도 지난해 겨울 일주일간 온 비로 38명이 희생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모래땅인 데도 물이 스며들지 않고 고스란히 흘러내리는 데다 황토흙 또한 빗물에 쉬 풀리기 때문이다.
'행복한 아이들'이란 뜻의 울레드사이드 마을의 '후가라'도 눈길을 끈다. 후가라는 사막 오아시스 마을 특유의 정교한 물 분배시스템.울레드사이드의 후가라는 세개의 수로를 통해 들어오는 지하수의 흐름을 얽어 놓았다. 한 방향에서 들어오는 지하수가 말라 끊기더라도 다른 쪽에서 흘러드는 지하수가 자동 공급된다. 한쪽 수로를 공사할 이유가 생겼어도 전체적인 물 흐름이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물은 울레드사이드보다 높은 지역에서 판 관정에서 자연스레 흘러내려온다. 11세기 이후 지속되어온 방식으로,물을 길어올리고 또 보내기 위해 전기를 쓸 일이 없는 그린 시스템이다.
사막의 장미와 모래바람
4륜구동 지프는 소금평원 한복판으로 들어선다. 원래 거대한 호수였던 지역이다. 평탄한 모래평원에 하얀 소금 알갱이가 노출돼 있다. 모래거죽을 살짝 걷어내면 소금 덩어리도 보인다. 옛날에는 이 소금평원에서 채취한 소금을 정제해 팔기도 했다. 소금기에 굳은 모래밭의 발자국 소리가 독특하다. 한밤의 소금평원은 달빛을 받아 마치 하늘의 은하수가 내려앉은 것 같은 느낌이다.
'사막의 장미' 지역도 경이롭다. 사구지역으로의 낙타 유람이 시작되는 곳으로,관광기념품으로도 판매되는 천연 그대로의 사막의 장미를 볼 수 있다. 사막의 장미는 장미꽃 모양의 자연석.모래의 규사 성분과 황산칼슘 성분이 오랫동안 반응해 형성된다고 한다. 바닷물 속의 산호가 자라듯 커지는데 그 모양이 하나같이 붉은 장미꽃을 닮은 게 신기하다.
오후의 사하라는 모래바람이 주인공이다. 오전에는 맑기만 했던 하늘이 순식간에 뿌옇게 변한다. 거친 숨소리의 모래바람은 지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모래둔덕의 형태를 바꾸고 또 새로 만든다. 폭좁은 아스팔트길도 모래먼지의 흐름에 따라 어지럽게 비틀댄다. 그 모래바람 너머로 하루 해가 진다. 유난히도 커다랗게 보이는 태양은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모래지평 너머로 뚝 떨어진다. 그리고는 모든 게 갑자기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바람소리조차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티미문(알제리)=글/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
알제리의 정식 국명은 알제리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다. 북아프리카 중앙 지중해에 접해 있는 나라로,모로코 서사하라 모리타니아 말리 니제르 리비아 튀니지 등 7개 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1830년 이후 130여년간 프랑스 식민 지배에 놓였었다. 1954년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 조직 이후 150여만명이 희생됐던 알제리전쟁 끝에 1962년 독립했다. 이슬람구국전선(FIS)이 승리한 1991년 말의 총선 결과 무효화를 선언한 군부 쿠데타 이후 10여 년간 정부와 이슬람 무장세력 간 내전에 준하는 무력충돌이 지속됐다. 이른바 '암흑의 10년'이라고 부르는 시기로 그 여진이 아직 남아 있다.
수도는 지중해 연안의 이 나라 최대 항구인 알제.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열 배인 238만2000㎢.아프리카에서는 수단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인구는 3440만명.아랍인이 80%,베르베르인이 20%다. 90%가 이슬람 수니파다. 인구의 90%가 국토 면적의 10%에 해당하는 아틀라스산맥 이북 지중해 연안 도시에 몰려 산다. 외교관을 포함한 115명의 한국인이 알제에 거주하고 있다. 비즈니스맨을 대상으로 한 한국게스트하우스도 있다. 통화단위는 디나르.요즘 환율은 1달러에 71디나르 선.디나르 가격에 20을 곱하면 쉽게 한화가격을 알 수 있다. 특급호텔에서만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한국보다 8시간 늦다. 전기규격은 220볼트.관광객도 비자가 있어야 입국할 수 있다.
알제는 겨울 최저기온이 8~12도 내외이며,여름 최고기온은 28~32도.사하라 사막지대는 일교차가 매우 심하다. 낮에는 45도까지 올라가고 밤에는 10도 이하로 떨어져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말라리아 등 풍토병 예방접종을 할 필요는 없다. 알제까지 직항편은 없다. 보통 파리를 경유해 들어간다. 인천~파리는 12시간,파리~알제는 2시간 반 소요된다. 알제에서 티미문까지는 국내선인 에어알제리를 이용한다. 2시간30분 걸린다. 티미문에서는 구라라호텔을 최고로 친다.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메슈이'가 꼽힌다. 어린 양을 통째로 굽는 고급 요리다. '쿠스쿠스'도 먹을 만하다. 곱게 빻은 밀 알갱이의 질감이 느껴지도록 쪄낸 '스물'에 육류나 채소,소스를 얹어 먹는 요리다. 대추야자와 오렌지 맛도 기막히다. 달착지근한 민트차는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알제리선 적포도주도 알아준다. 선물로는 대추야자,사막의 장미,모래그림이 적당하다. 알제리관광국 www.ont-dz.org,주알제리 한국대사관 //dza.mofat.go.kr,클럽 어드벤처 아프리칸느 www.caa-dz.com,팀가드 보이지 www.timgad-voyag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