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태의 트렌드 따라잡기] 스칸디나비아 가구 그 간결함에 홀리다

에코ㆍ빈티지 결합… '자연으로 회귀'에 초점
한국은 트렌드라는 관점에서 보면 참 재미있는 나라다. 프랑스와 함께 할리우드 영화가 압도하지 못하는 유이(有二)한 나라이고,미국산 청바지가 시장을 장악하지 못한 유일한 국가여서 한때 패션 마케팅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남들 다 해도 자기 맘에 안 들면 꿈적도 않는 '근성'이 있는 셈이다.

이런 한국인 기질이 가장 강하게 발휘되는 분야가 바로 가구 인테리어다. 세계적으로 오색찬란한 컬러와 신소재를 사용한 미니멀한 가구들 일색이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따뜻한 나무의 숨결이 느껴지는 빈티지 가구들에 열광한다. 따라서 봄을 맞아 큰 맘 먹고 인테리어를 바꾸려면 '월페이퍼' '인테르니니' 같은 해외 유명 잡지보다는 국내 '메종'이나 '행복이 가득한 집'을 참조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인테리어 트렌드는 무엇일까. 패션에도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등 4대 컬렉션이 있듯이 인테리어 쪽에서 가장 유명한 박람회로 파리 '메종&오브제'와 '밀라노 가구 페어'를 들 수 있다. 이들 박람회는 최신 인테리어,데코레이션 트렌드를 선보이고 유행을 선도하는데,요즘엔 '컬러풀'과 '신소재' 두 가지가 키워드다. 불황일수록 알록달록하고 과감한 디자인이 유행한다는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지난 1월22~27일 열린 메종&오브제에서는 엘리자베스 르리쉬,프랑수아 베르나르 등 한창 주목받는 디자이너들이 각기 테크놀로지와 컬러를 주제 삼아 참신한 작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에코' 열풍과 '빈티지'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두 컨셉트를 하나로 묶는 것이 바로 스칸디나비아 가구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인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슨,알버 알토 등 북유럽 출신 디자이너들이 언제나 구매 리스트 최상단에 오른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란 한마디로 간결함이 가장 큰 특징이다. "나는 의자를 만들 때 최대한 간결하게 네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시트와 팔걸이를 얹는다"고 밝혔던 한스 웨그너의 디자인관이 가장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불필요한 기능을 과감히 포기한 실용적인 제품,인위적 장식을 배제하고 자연으로 회귀한 디자인,즉 '심플'과 '베이식'에 기반을 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가구들은 1950년대 이후 꾸준히 사랑받아온 디자인이어서 새롭다고 할 수 없지만 어찌된 연유인지 국내에서는 변함없이 인기를 모은다. 반면 유럽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20세기 가구 경매 사상 최고가인 2190만유로(약 420억원)에 팔린 아일랜드 출신 에일린 그레이의 작품 '용(龍)' 안락의자처럼 다소 장식적이고 화려한 의자를 선호해 대조적이다.

또 국내에서는 워낙 30~100년 정도 된 빈티지 가구(앤티크는 100년 이상 된 가구)들이 강세여서 소재 역시 플라스틱이나 다른 신소재보다 오래 쓸수록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나무가 압도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나무 소재는 에코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앤티크와 에코에 대한 한국인의 무한한 애정은 난해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피에트 하인 이크의 가구까지 들여오게 만들었다. 네덜란드 출신인 이크는 산업 재활용품으로 가구를 만드는 에코와 빈티지 가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가다. 봄을 맞아 자연 느낌 그대로 집안을 꾸미기로 맘 먹었다면,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첫째 유명 디자이너들의 오리지널 작품을 본떠 만든 '레플리카'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아르네 야콥슨 등의 오리지널 가구는 수천만원을 호가해 일반인들은 살 엄두를 낼 수 없는 감상용 '작품'이기 때문.이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정수를 손쉽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홍대 앞 카페 'Aa'를 들 수 있다. 성북동과 청담동에서 쇼룸을 운영하는 '모벨랩'은 저렴하게 스칸디나비아 가구를 살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모벨랩에서는 유명 디자이너 작품은 물론 덜 알려진 디자이너 작품도 많이 전시돼 있어 무조건 비쌀 것이라는 편견을 없앨 수 있다.

둘째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아니어도 나뭇결과 무늬를 이용해 실용적인 가구를 제작하는 곳을 찾아 주문 제작하는 것이다. 압구정동의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카페 '무이무이'에 가면 높다란 천장,넓은 공간과 잘 어울리는 가구들이 눈길을 끈다. 이는 내촌목공소를 운영하는 가구 디자이너 이정섭의 작품이다. 또 미술평론가였던 김진송과 이지영(탤런트 손창민의 부인) 등이 멋진 원목가구를 주문 제작한다. 단순하고 자연 친화적인 가구들이 만들어내는 '비움의 미학'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편안한 공간을 선물해 줄 것이다.

이왕 큰 비용을 감수하면서 인테리어를 바꾼다면 익숙한 우드 계열 대신 톡톡 튀는 컬러풀한 가구들로 기분 전환을 하는 것도 괜찮다. 트렌드는 결국 돌고 돈다는 점에서 몇 년 뒤 등장할 '포스트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제1 후보가 바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미래풍 가구들이기 때문이다.

/패션 칼럼니스트 · 월간 '데이즈드 & 컨퓨즈드' 수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