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도리안 그레이

안택수
세상에서 젊고 아름다운 것만큼 귀하고 값진 게 없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이 부러움의 대상은 시대가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그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Dorian Gray)의 초상》에서 영원한 젊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초상화에 영혼을 판 한 젊은이의 어그러진 모습을 그렸다. 도리언 그레이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꽃미남'으로 뭇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주위의 유혹에 빠져 영혼을 초상화에 팔고 영원한 젊음을 얻는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그토록 원했던 영원한 젊음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고 그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 결국 죄의식과 초조함에 사로잡혀 초상화를 찢고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 책이 발표된 당시에는 영국 사회로부터 '풍기문란'의 주범으로 비난받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몇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도리언 그레이는 주목받았고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음악 밴드가 결성될 만큼 유명세를 치렀다. 이뿐만 아니다. 세간에서 '도리언 그레이 신드롬(DGS)'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사회병리학적으로 연구한 사례가 있다고도 한다. 비단 젊어지기 위한 노력이 이뿐이겠는가? 온갖 명약이 난무하고 갖은 처방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현대판 '도리언 그레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개인부터 보자.외모를 위해 수입의 대부분을 쏟아붓고도 오히려 만족하지 못한다. 실력을 쌓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써야 할 귀중한 시간과 돈을 외모를 가꾸는 데만 소비하는 젊은이들이 허다하다. 기업은 어떤가. 미래의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치중해야 함에도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기업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불요불급한 대형 건물을 짓거나 과도한 인수 · 합병(M&A)으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모두가 IMF 외환위기보다 더한 경제 위기라고 하는 지금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지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회 주체들이 도리언 그레이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내실을 다지기 위해 참고 노력하며 조금씩 나누는 방법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개인은 미래를 위해 자신을 더욱 갈고 닦아야 할 시기이고 기업은 내실 있는 경영과 일자리 창출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며 정부는 사회의 큰 울타리가 되어 개인과 기업이 모두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을 등한시할 때,우리 사회는 도리언 그레이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남녘의 끝자락부터 봄꽃 소식이 전해진다. 거리엔 젊고 아름다운 이들이 넘쳐난다. 이 화사한 봄날 아침에 도리언 그레이가 생각 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