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핵분열 예고하는 민노총

윤기설 노동 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얼마 전 '민주노총 혁신 대토론회'가 열린다고 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세상이 바뀐 만큼 민주노총도 달라지려는 구나"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는 대토론회가 열리자마자 실망감으로 뒤바뀌었다. "암에 걸린 조직,구제할 길이 없고 곧 사망할 것" 등 일부 강도높은 비판도 제기됐지만 민주노총의 운동기조를 바꾸자는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말뿐인 민주노총의 위기와 혁신','오래된 혁신론,그러나 전혀 변하지 않는 노동운동'이란 그럴 듯한 논제를 잡은 토론자도 있었지만 투쟁동력을 일으키지 못하는 원인찾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토론 멤버들도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사회진보연대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현장실천연대 노동전선 혁신연대 전진 등 온통 진보단체 관계자들 일색이어서 민주노총 내에 개혁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했다. 대토론회가 열리기 전에만 해도 온건파들은 보수색채를 가진 전문가들을 함께 초청해 '끝장토론'을 벌일 것을 주장했다. 그래야 민주노총이 진정 개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강경파의 반대로 곧 묻혀지고 말았다. 사실 민주노총은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온건노선의 국민파와 강경노선의 중앙파,현장파가 대립각을 이루며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는 조직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한 지붕 안에서 살림을 꾸리고 있지만 현안문제가 불거지면 제 색깔을 드러내며 갈라선다. 노사정위 참여를 위한 대의원투표 때는 강 · 온파 간 육박전을 방불케 하는 충돌이 빚어졌고 한 · 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저지 때는 강경파 입김이 센 금속노조가 국민파 지도부가 장악하던 민주노총을 제껴둔 채 시민단체와 파업을 벌인 적도 있다. '혁신불능'조직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노총 설립 산파역을 맡았던 고(故) 권용목 초대 사무총장이 '민주노총 충격보고서' 서문에서 "민주노총이 개혁대상인지 해체의 대상이 될지는 그들 스스로의 몫이다"고 밝힌 대목은 뼈아픈 개혁의지가 없으면 해체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건전한 노동운동이 정착되기 위해선 지도부가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민주노총 같은 노동단체는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 민주노총 내 온건파와 강경파는 조직 발전을 뒷전으로 한 채 땅따먹기식 헤게모니싸움에 열을 올린다. 국민파 출신으로 민주노총을 이끌던 이수호,이석행 전 위원장은 '투쟁 대신 대화' 문화를 조직에 심으려다 강경파에 밀려 실패하기도 했다.

내년 1월 복수노조가 시행돼 현장노조들의 계파 간 분열이 심화되면 민주노총 지도부는 제갈길을 향해 갈라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민주노총은 해체대상이 되기 전 스스로 해체의 길을 갈 것이다. 봄만 되면 노동계의 '춘투(春鬪)'로 골머리를 앓다가 소수 강경좌파세력이 따로 떨어져 나간 뒤 노사안정을 찾은 일본의 선례는 '투쟁과 대화'노선 사이에서 고민하는 민주노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불고 있는 민주노총 탈퇴 도미노현상은 조직이 해체되는 서곡에 불과하다.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핵분열식 갈라서기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민주노총의 해체도 가시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