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만엔→160만엔…하이브리드카 '가격파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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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高 해소되면 1000만원대 국내 시판하이브리드카 한 대값이 160만엔. 요즘의 원 · 엔 환율(100엔당 1500원)로는 2400만원이지만,1년여 전 환율(100엔당 750원)로 따지면 1200만원에 불과한 '가격 파괴' 자동차다. 글로벌 톱메이커이자 친환경자동차의 '원조'로 꼽히는 도요타가 2년 뒤 출시를 예고한 신형 하이브리드카의 가격이다.
7월 아반떼 LPI 출시 앞두고 현대차 '긴장'
경쟁회사인 혼다가 올초 1300㏄짜리 하이브리드 '인사이트'를 189만엔(기본모델 기준)에 내놓으며 돌풍을 일으키자 즉각 반격에 나선 것이다. 오는 7월 첫 하이브리드 양산모델 아반떼 LPI(LPG 직분사)를 출시,시장 데뷔를 예고한 현대자동차에는 즉각 비상이 걸렸다. 9월에 포르테 LPI를 내놓기로 한 기아자동차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아반떼 하이브리드 출시 예정가격은 2000만원 선이다.
◆한국 부품업체들엔 '기회',완성차업체는 '비상'
도요타가 간판 하이브리드 모델인 '프리우스'의 후속모델을 100만엔대 가격에 2011년 내놓겠다고 미리 예고한 이유는 뭘까. 글로벌 불황을 타개할 유망 시장으로 떠오른 그린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진다. 정확한 가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프리우스보다 20~30% 정도 낮출 방침이라는 게 일본 자동차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현재 프리우스(배기량 1500㏄) 평균가격이 대당 234만엔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새 모델은 대당 160만~170만엔 정도가 될 것이란 얘기다. 도요타는 낮은 가격에 맞추기 위해 주요 부품을 다른 일반 차종과 공유하기로 했다. 또 최근 엔고로 국내 부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만큼 해외 부품 조달을 늘리는 등 글로벌 소싱 체계도 전면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한국 부품업체들의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자동차 업체에 대한 부품 공급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KOTRA는 오는 9월 아이치현 도요타 본사에서 한국의 30여개 자동차부품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한국 부품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하이브리드카 가격 인하 경쟁으로 기회를 맞은 한국 부품업체들과 달리 현대 · 기아차 등 하이브리드 출시를 눈앞에 둔 완성차업체들은 대응책을 놓고 고민이 깊어졌다. 가뜩이나 하이브리드 시장 진입이 늦은 국내 기업들은 일본 업체들과 기술 · 인지도 경쟁에 더해 가격경쟁 압박마저 받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업체들도 현대 · 기아차보다 한발 앞서 저가의 하이브리드카를 출시,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국 자동차업체인 BYD는 프리우스보다 저렴한 15만위안(약 3240만원)의 하이브리드카인 'F3DM'를 작년 말 출시했다.
◆현대 · 기아차,2000만원대 하이브리드카 하반기 출시가격 경쟁은 하이브리드카의 소형화 · 경량화로 이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현재 1300~1500㏄가 주류인 일본 하이브리드카 배기량은 향후 1000㏄나 그 이하급으로 내려가고 차 크기도 현재 4~5인승에서 어른 3명과 어린이 1명이 탈 수 있는 경차 수준으로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현대 · 기아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소형차 부문을 중심으로 하이브리드 모델을 다양하게 내놓는 전략을 다듬고 있다. 하지만 일본 업체들이 '기선 제압'을 위한 국내 상륙 확대를 서두르고 있는 게 변수다. 도요타는 올 10월께 한국에 프리우스를 투입하고,혼다는 인사이트를 이르면 내년 초 출시할 예정이다.
단기적으로는 일본 차의 공습이 국내 자동차업체의 하이브리드카 판매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원화 약세 때문이다. 현대차 아반떼 LPI 가격(2000만원 안팎)은 지금의 환율로는 혼다 인사이트보다 약 800만원,도요타 프리우스보다는 1000만원 이상 싸다. 하지만 앞으로의 환율 방향이 변수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최근 "연말께 환율효과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체질을 강화한 일본업체들과의 결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악의 경우 원 · 엔 환율이 1년여 전 수준으로 되돌아간다면 도요타 하이브리드카가 국산차보다 800만원 가까이 낮은 가격에 팔리게 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업체들은 디젤 하이브리드,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등 틈새 친환경차 분야의 개발에 나서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이상열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