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일본경제 리포트] (上) 日열도 '제조업 붕괴' 공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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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설비 스크랩 사태 올 수도""어제 온종일 지역구를 둘러봤습니다. 답답할 뿐이네요. "
지난 13일 일본 도쿄의 ANA호텔.조찬을 함께하며 한 · 일 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자던 나카가와 마사하루 중의원 의원(59)은 어두운 표정으로 경제 얘기부터 꺼냈다. 그의 지역구는 미에현.욧카이치 스즈카 가메야마 등 주요 도시마다 자동차 LCD(액정표시장치) 플래시메모리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제조시설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지역이다.
그의 하소연대로 이곳에 몰아닥친 경제위기의 충격파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스즈카에 위치한 혼다 하이브리드카 공장은 휴업과 감산을 거듭하고 있고,욧카이치의 도시바와 후지쓰는 감산 탓에 월급이 줄어든 직원들에게 부업을 독려하고 있다. 가메야마의 샤프 LCD공장은 수요 감소와 엔고의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설비 일부를 중국에 매각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조업이지요. 자동차 · 전기 업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어요. 해외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했고…."(구로다 아쓰오 경제산업성 통상교섭관 · 54)'제조업의 위기'.일본 정부와 경제계는 지금의 일본 경제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모노즈쿠리(좋은 물건 만들기) 대국'으로선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일본 제조업 위기의 출발점은 '잃어버린 10년'이다. 당시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는 거의 없었다. 경쟁력 강화의 노력마저 잊어야 했던 고통의 10년이었다.
그러나 버블이 걷힐 무렵 미국의 호경기와 중국 등 신흥국의 고성장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내구소비재와 자본재 수출에 불이 붙으면서 일본은 2002년부터 6년 연속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2차대전 이후 가장 긴 호황이었다. 제조업의 해외 매출비율은 2001년 30%에서 2007년 46%까지 뛰었다. '잃어버린 10년'의 교훈을 잊은 채 기형적 해외수요 폭발과 엔저의 달콤함에 취해 있던 시점이다. 곪은 상처를 터뜨린 것은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미국의 소비가 급감하면서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 대한 수출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엔고가 겹치고 말았다.
"지난해 10~12월 수출이 45%나 감소하면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연율로 12.1%나 감소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수출은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고 있지요. 글로벌 경제위기가 외수의존적 경제에 직격탄을 가한 셈입니다. "(다테이시 노부오 오므론 상담역 · 73)
2008년 결산을 앞둔 자동차 전기 등 제조업체들은 초주검 상태다. 도요타가 사상 최대인 4500억엔의 영업손실을 예상하고 있고,도시바와 소니도 각각 2800억엔과 2600억엔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우량기업들도 설비와 인력 과잉은 물론 자금난에 허덕이면서 '위기설'을 낳고 있다. 주가도 바닥이다. 하지만 양상이 지난해와 다르다. "작년 10~11월 주가 하락은 위기에 봉착한 미국 금융회사들이 일본 기업의 주식을 매각하면서 빚어진 일이었지만 지금의 주가 하락은 시장이 일본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보기 때문" (다케모리 ?z페이 게이오대 교수 · 53)이라는 분석이다.
"산업기반 자체가 소실되고 있어요. 경쟁력이 너무 떨어졌지요. 이번에는 생산설비를 스크랩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다케모리 교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경제를 내수지향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재무차관을 지낸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같은 이들은 세계가 저성장 시대에 돌입할 것이라며 아예 일본은 농업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창할 정도다. '농업국가론'은 지나치다 해도 "어떤 형태로든 경제구조에 대변혁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일본인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다. 2009년 봄,일본은 또 다른 '잃어버린 10년'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