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경기판단 어떻게 하나‥경기예측, 변수만 40개넘는 '超高次방정식'

해외영향 더 커져
韓銀 조사국 100명이 자료분석만 한 달 매달려
"등산객 늘어나면 불황"式 체감형 전망도 활용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경기 하강이 작년 말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깊고 길어지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강하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최근 재정부 장관과 한은 총재가 경기 전망과 관련해 했던 발언이다. 현재 경기가 침체돼 있다는 인식은 같지만 전망과 관련해서는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두 경제 수장은 어떤 판단에 따라 이 같은 전망을 내놓은 것일까. 재정부와 한은 등 관련 기관들은 어떻게 경제 흐름을 진단하고 예측할까.

◆한은 조사국 직원 100명이 한 달간 작업

경기 흐름을 가장 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표는 통계청이 매달 작성해 발표하는 경기동행지수와 경기선행지수다. 경기동행지수는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비농가취업자수 △광공업생산지수 △제조업가동률지수 △건설기성액(건설 공정의 진행 정도를 가격으로 환산한 수치) △서비스업생산지수(도소매업 제외) △도소매업판매액지수 △내수출하지수 △수입액 등 8가지 실물 지표를 바탕으로 산출된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달까지 12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 침체 국면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음을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경기선행지수를 통해서는 향후 경기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구인 · 구직자비율 △재고순환지표 △소비자기대지수 △기계수주액 △자본재수입액 △건설수주액 △종합주가지수 △금융회사 유동성 △장단기 금리차 △순상품교역조건 등 10개 지표를 종합해 산출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경기가 언제,얼마나 좋아질 것인지를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경기동행지수나 선행지수를 산출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집어넣을 수 있는 경기예측 모형을 만들어 사용한다. 한은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경제전망 모형으로는 'BOK04''BOK 동태 · 확률 일반균형모형(DSGE)' 등이 있다. 이들 모형은 여러 개의 변수와 식으로 구성된 연립방정식이라고 보면 된다. 수학의 연립방정식에 x,y 등의 변수가 있는 것처럼 한은의 경제 모형에는 국제유가 경상수지 물가 실업률 환율 금리 등 약 40개의 경제 지표들이 변수로 들어가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를 비롯한 민간 경제연구기관도 한은과 비슷한 방식으로 경제예측 모형을 통해 경기를 전망한다.

같은 경제예측 모형을 써도 전망 결과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경기 전망이 단순 계산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을 예측할 때 향후 환율과 금리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점쳐서 모형에 집어넣어야 한다. 환율과 금리에 대한 전망을 다르게 하면 성장률 예측도 달라진다. 집어넣는 변수들이 같더라도 각각의 가중치가 다르면 전망치도 달라진다. 이중식 한은 거시모형반장은 "한은이 분기 및 경제 전망을 내놓을 때는 100여명의 조사국 직원들이 각종 변수의 흐름을 예측하기 위해 국내외 자료를 수집,분석한다"며 "이 과정에만 약 한 달이 걸린다"고 말했다.

모형을 통해 산출한 전망치가 나오면 내부 회의를 거쳐 타당성 검토를 하게 된다. ◆국제경제,금융 변수 영향 확대

경제연구기관들의 고민은 경기 전망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두 차례나 수정했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2009년 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0%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올해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라며 전망치를 수정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경제 상황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커졌고 금융과 실물경제의 관계도 예전보다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면서 경기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주체들의 미시적인 움직임이 점점 중요해지는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주변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는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경기가 생각보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은은 이러한 변화상을 반영한 새로운 경제 전망 모형을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국내 경제의 민감도를 높이고 금융과 실물 부문의 연계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반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이후 금융과 실물의 관계가 중요해졌는데 이를 어떻게 경제 모형에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론적으로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은행 지점장 자리 자주 비우면 불경기

수학적이고 통계적인 경제예측 모형보다는 실생활에서 느껴지는 여러 변화를 통해 경기를 판단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예컨대 은행 지점장들은 불경기가 오면 연체 위험이 없는지 살피기 위해 고객을 더 많이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지점장이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아지면 불경기'라는 얘기가 있다. 등산객이 늘어나면 불황이라는 설도 있다. 실직한 사람들이 산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이빨이 아파도 참기 때문에 치과 환자가 줄어든다거나 보약을 지으러 한의원을 찾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얘기도 있다. 백화점의 여성복 매출,고속도로 통행량 등도 경기를 전망하는 속보 자료로 활용된다.

유승호/차기현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