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인터뷰] '김연아의 하루' 만들기…"CF 200개 넘게 들어와 골라내느라 애먹었죠"

스포츠마케터…IB스포츠 구동회 부사장
요즘 텔레비전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인물은 김연아 선수다. 현대자동차와 삼성하우젠 에어컨,매일유업 광고뿐만 아니라 생리대 '위스퍼'와 화장품 '라크베르',섬유유연제 '샤프란'의 광고에도 얼굴을 내민다. 최근까지 학생교복 업체인 '아이비 클럽'의 광고모델로도 등장했다. 한때 유행했던 '이영애의 하루''전지현의 하루'라는 패러디처럼 '김연아의 하루'도 나와야 할 판이다.

김 선수가 이처럼 광고모델 시장을 평정한 것은 그의 탁월한 성적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 뒤에는 김 선수의 상품가치를 극대화한 마케팅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 초기 단계인 스포츠 마케팅 시장이 김 선수를 매개로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김 선수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 · 시행하고 있는 IB스포츠 구동회 부사장(45)을 만나 '스포츠 마케터'의 세계를 살펴봤다. ▼'스포츠 마케팅'은 아직 일반에겐 생소한 분야인데,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마케팅은 마케팅인데 앞에 스포츠가 붙은 것이죠,하하.스포츠 마케팅도 다른 일반 마케팅처럼 고객을 창출하고 유지하고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둔 것은 같습니다. 다만 일반 마케팅 분야와 달리 운동선수,경기,선수의 이미지 등을 관리해 스폰서십(후원) 유치,중계권 확보,선수 매니지먼트,선수 관련 상품 출시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

▼가령 김연아 선수의 스포츠 마케팅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우선 김연아 선수 개인에 대한 매니지먼트 분야가 있습니다. 선수를 관리하고 스케줄을 짜고 훈련을 지원하는 것이지요. 이와 함께 선수의 마케팅과 관련된 마케팅 매니지먼트 분야가 있는데 김 선수가 받는 후원,CF 활동,라이선싱 계약,머천다이징,선수 브랜딩 작업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선수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세우고 전략에 맞는 이미지 메이킹 작업과 브랜딩,스토리 메이킹도 병행합니다. "

▼김 선수의 경우 다양한 분야의 담당자들이 있던데요.

"모두 6명의 스포츠 마케터가 팀을 이뤄 김 선수를 담당합니다. 김 선수가 캐나다 토론토에 자주 가기 때문에 그 준비를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외국인 코치와의 커뮤니케이션도 도와줘야 해요. 지난해부터 시작한 아이스쇼 사업에도 손이 많이 가죠.해외 유명선수들을 초청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일,국제대회 참가와 관련된 해외 빙상연맹 등과의 각종 커뮤니케이션,해외 미디어들이 요청하는 인터뷰 주선 등도 스포츠 마케터의 일이고요. "▼김 선수 외에 현재 담당하고 있는 주요 스포츠 스타들은 누가 있나요.

"김연아 선수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절대적이긴 하죠.그러나 김 선수 외에도 쇼트트랙의 안현수,배구의 얼짱 스타 김요한,피겨스케이팅에서 제2의 김연아로 불리는 윤예지,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골프의 박인비 등 여러 선수들의 마케팅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북한 축구선수 정대세의 경우 일본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의 매니지먼트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선수의 마케팅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됩니까. "김연아 선수를 예로 설명해 볼까요. 우선 CF든 후원이든 선수 브랜드와 잘 맞을지,같이 엮었을 때 '윈윈'할 수 있을지 등을 고려합니다. 선수를 브랜드화하는 브랜딩 전략이 중요하니까요. 김 선수의 경우 지난 2년간 제의받은 CF가 200개를 넘는데 그 중에서 김 선수에게 맞는 이미지와 브랜드를 선택해야 합니다. 브랜딩 전략 수립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미지가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한데 김 선수의 경우 톱 브랜드가 돼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피겨 스타로서 알맞은 카테고리도 물론 고려했고요. 그래서 선택한 게 화장품과 전자제품,에어컨 등입니다. 자동차의 경우 피겨에 질주하는 부분이 있어 선택됐고요. "

▼다른 선수들의 마케팅 사례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저희가 관리하는 빙상 선수들도 많습니다. 빙상 하면 질주가 떠오르니까 자동차나 스피드가 중시되는 광랜 업체와 연계합니다. 피겨 스케이팅은 여성적인 스포츠여서 화장품과 궁합을 맞추려고 합니다. 물론 선수 이미지에 따라 달라지는 면도 있죠.배구의 김요한 선수는 '꽃미남' 스타여서 남성 화장품이나 패션과 연결시켰고,골프 선수의 경우엔 금융권이나 유통업계에서 관심이 많아요. "

▼고려할 점이 참 많군요.

"스포츠 마케터가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선수의 퍼포먼스죠.가수가 노래를 잘하듯 기본적으로 운동선수는 운동을 잘해야죠.하지만 기본이 갖춰진 다음에는 선수의 성장 가능성을 스포츠 마케터는 중시합니다. 현재 운동을 잘하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없다면 매니지먼트의 필요성은 그리 많지 않죠.스타로서의 잠재력이 있는지,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뭔가 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죠.

"다시 김연아 선수 얘기를 하자면 김 선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어요. 지금도 더 성장시킬 재능이 많습니다. 노래도 잘하고,춤도 잘 추고 거기에다 굉장히 똑똑합니다. 제대로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영어도 잘하고요. 아주 여성적인 것만도 아니어서 '보이시(boyish)'한 성격적 매력 등도 모두 고려했지요. "

▼처음 김 선수와 계약을 맺은 게 언제였나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였는데 김 선수는 이미 그 전에도 세계주니어대회에서 1,2위 입상 경력이 있었죠.하지만 한국 스포츠사에 보기 드문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측면에선 진전이 없었죠.그래서 우리가 브랜딩 전략만 잘 가져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계약할 때 '4년간 100억원을 벌어보겠다'고 제의했는데 그땐 김 선수의 부모님도,김 선수도 믿지 않더군요. 아마 '오버'한다고 생각했겠죠.하지만 이제는 그런 목표가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게 됐다고 생각해요. "

▼스포츠 마케터는 선수에게 뭘 해줄 수 있습니까.

"스포츠 스타가 창출한 부가가치의 90%는 기본적으로 선수의 퍼포먼스에 달렸다고 봐요. 매니지먼트의 역할은 10%도 되기 힘들죠.하지만 그 10%의 매니지먼트가 부실하면 선수의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마케팅시장에서 선수의 가치는 '제로(0)'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선수의 노력에 대해 제로(0)일 수도 있는 가치를 100으로 만들어 주는 게 스포츠 마케터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마케팅이 스타를 더 스타답게 만들 수 있거든요. 시합에서만 보고 열광하는 스타가 아니라 대중과 호흡하면서 꾸준히 대중에게 인지되는 스타를 만드는 게 그래서 중요해요. "

▼스포츠 마케팅의 수익구조는 어떻게 돼 있나요.

"스포츠 마케팅 회사의 기획으로 선수가 거둔 상업적 수입 등을 선수와 매니지먼트사가 나눠 갖는 구조입니다. 몇 %씩 나눌지는 종목이나 계약 사례별로 달라요. 방송 출연료,CF 모델 수입,라이선싱 계약,후원 계약,스폰서십 등 내용도 다양합니다. "

▼스포츠 마케팅에서 어려운 점은 뭔가요.

"선수가 아플 때 가장 힘들죠.운동선수는 몸이 생명인데 부상이 있거나 통증 때문에 자신의 기량을 펼치지 못하면 가장 안타깝습니다. 선수가 가장 고통스럽겠지만 매니저 입장에서도 속이 탑니다. 김연아 선수도 부상으로 고생한 적이 있고 최근에는 쇼트트랙의 안현수 선수가 크게 다쳐 수술을 세 번이나 한 다음 재활치료 중인데 선수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힘들어요. "

▼스포츠 마케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저는 스포츠신문 기자 출신입니다. 2003년 영국에 연수를 갈 기회가 생겨서 브라이튼대학에서 스포츠 컬처 앤드 미디어 석사과정을 밟고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스포츠 마케팅 분야를 접했습니다. 귀국해 보니 스포츠신문 시장이 위축돼 있었고 때마침 2006년 독일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의 월드컵 마케팅 대행 업무를 하게 돼 스포츠 마케터로 변신했지요. "

▼앞으로 계획이나 포부는 무엇인가요. "스포츠 마케팅은 경기를 많이 타는 업종이긴 하지만 킬러콘텐츠는 살아남을 겁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거대 기업들을 빼면 자생력을 갖춘 스포츠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아직 스포츠산업 인프라나 수요층이 부족하기 때문이죠.선진국에서는 주요 스포츠 구단들이 스폰서십,중계권 수입,상품화 사업,티켓 수입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데 우리는 한두 개 구단을 빼고는 대부분 기업의 지원에만 의존합니다. 이런 부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아시아 최고의 스타 마케팅을 해보고 싶어요. "

글=김동욱/사진=강은구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