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머니 무브] 기다릴만큼 기다렸다…회사채·상업용 빌딩 '눈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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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펀드 뭉칫돈 금·외화채권 등으로 넓혀
"언제까지 안전자산에만 돈을 묻어둘 수는 없잖아요. 미국 다우지수도 다시 7000포인트를 회복했는데 이제 주식 투자를 조금씩 늘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
"고객님,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기에는 아직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최근 은행과 증권사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2~3%에 불과한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해 보다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싶어하는 고객과 섣불리 나섰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하는 PB 사이의 밀고 당기기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는 이달 들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일부 실물지표는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PB 고객을 비롯한 거액 자산가들로부터 조금씩 투자 심리가 되살아나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수익성 향해 무게중심 이동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지난해 9월 이후 투자의 제1 명제는 '안전성'이었다. 코스피지수가 고점 대비 50% 이상 하락하고 직접투자에 비해 안전하다고 믿었던 펀드마저 죄다 반토막이 나 버린 상황에서 당연한 결론이었다. 아무리 금리가 낮아져도 은행 예금과 적금 잔액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현상도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설명된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현재 거액 자산가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 PB들은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겠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한다.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음은 채권 수익률의 하락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3년 만기 회사채(AA- 기준)의 금리는 지난 1월 초만 해도 7%대 후반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5%대 후반으로 약 2%포인트나 떨어졌다. 회사채보다 안전한 국채와 은행채로만 몰리던 채권 투자 수요가 회사채 시장으로도 흘러들어가면서 채권 가격이 상승(금리 하락)한 것이다. 국내 소매 채권 판매 부문에서 점유율 1위인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올 들어 지난 19일까지 1조5500억원어치의 채권을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0%나 많은 규모다.
박용식 대우증권 압구정자산관리센터장은 "한두 달 전만 해도 국채만 거래가 잘 됐는데 얼마 후 은행채 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뒤이어 회사채 거래가 늘어났다"며 "투자자들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부동산 외화채권 금 등으로 투자 다변화여러 가지 자산에 나눠서 투자한다는 포트폴리오 전략의 지평도 과거보다 넓어지는 추세다. 글로벌 경기의 흐름에 따라 어느 자산의 가격이 오르고 어느 자산의 가격이 내릴지 장담할 수 없는 만큼 보다 다양한 자산에 분산해서 투자해야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는 투자자들이 현금을 많이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향후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자산도 일정 부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게 최근의 흐름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앞으로 달러 유동성 증가로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도 커졌다. 이에 따라 금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면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게 되므로 이와 관련된 펀드로도 거액 자산가들의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상업용 건물의 경우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아직 가격이 바닥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지금쯤 사 두면 경기가 회복되는 2~3년 뒤에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관심을 갖는 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창수 하나은행 아시아선수촌 PB센터 팀장은 "거액 자산가들 중에는 수익과 상관없이 건물을 갖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들도 많다"며 "실물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수요를 탄탄하게 형성하면서 상업용 건물의 가격이 많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외화표시채권도 거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인기다. 국내 기업이나 은행이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의 일부를 증권사가 인수해서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현재 외화채권의 금리는 평균 연 6% 안팎이다. 다만 거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장외에서 수억원 단위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일반 투자자가 외화 채권을 사기는 힘들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는 아직 위험
거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투자 심리가 살아나고 있기는 하지만 시장이 본격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비록 글로벌 금융위기가 소강 상태를 보이고는 있지만 어디서 다시 대형 악재가 터져나와 쓰나미처럼 금융시장을 덮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관석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경기침체가 더 깊고 오래갈지,예상보다 이르게 회복될지는 점치기 힘들다"며 "따라서 어느 자산에 투자하든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박용식 센터장도 "아직은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고 여러 부문에 분산해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