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리베이트와의 결별

최승욱 과학벤처중기부장 swchoi@hankyung.com
지난해 초 한 제약사는 판매촉진 캠페인을 벌였다. 신제품을 월 500만원 이상 사들인 의사와 가족들을 관광지로 초청,3박4일 동안 바다낚시 꿩사냥 골프 등을 즐기도록 했다. 모든 비용은 제약사가 댔지만 실질적인 부담은 병의원에서 처방전을 발급받아 약국에서 전문의약품을 구입한 국민들에게 전가됐다.

제약회사들이 고질적인 리베이트 관행을 끊겠다고 나섰다. 한국제약협회는 최근 공정경쟁준수위원회 1차 회의를 갖고 의약품을 팔기 위해 금품을 주거나 향응을 제공하는 행위가 신고되면 사실 여부를 조사한 뒤 중징계 사안이라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는 지켜봐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리베이트를 추방하겠다며 각종 기구와 위원회가 발족,활동했지만 리베이트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조치는 외압에 밀려 결정된 측면도 크다. 지난해 10월 모 제약사의 리베이트 제공 의혹이 알려져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를 벌인 데 이어 12월에는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제약회사와 의약사 간 리베이트 고리를 끊을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이든 다 쓸 계획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사실 어떤 제약사도 리베이트 제공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다.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전문의약품의 매출비중은 8할을 넘는다. 의사가 의약품 선택권을 쥐고 있는만큼 명절 때나 신제품 출시 기간만 되면 병의원의 문턱이 영업사원들로 닳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대학 병원에서 의약품 채택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키닥터(key doctor)몇 명만 잡으면 약품을 팔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가 지금도 나오고 있지 않나.

문제는 이런 부패 관행이 유지되는 한 제약업계의 도약은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저가 복제의약품(카피)을 리베이트를 줘가며 팔아 연명하는 제약사가 있는 마당에 어느 업체가 신약 개발에 나서겠는가. 효능과 가격에 따른 진정한 경쟁으로 제약업계의 옥석이 가려져야 한다. 더구나 우리 경제 성장동력 중의 하나는 바이오산업이다. 그 주체가 제약회사다. 제약업계의 도덕성이 의심되는 현실에서 정부가 도울 명분도 없다. 리베이트 근절은 의지의 문제다. 한 병원을 놓고 여러 제약사끼리 경쟁하는 만큼 특정 의약품의 처방 급증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제약업계가 '침묵의 카르텔'에서 탈피,비리를 상호고발하면 누구도 함부로 현금이나 상품권을 뿌릴 수 없다.

병의원은 갑이고 제약사는 을인 구도에서 소비자의 권한 확충을 통한 견제도 생각해봄직하다. 소비자들이 의약품 정보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전문의약품에 대한 광고제한부터 재검토하자는 얘기다. 전문의약품은 오남용을 방지한다는 취지 아래 의사나 약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지에 한해 광고가 허용된다. 그런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매체인데도 전문지라고 표방만 하면 전문의약품 광고를 버젓이 실을 수 있는 실정이다.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뒤따라야 한다.

리베이트 수수 관행은 의약품가격에 거품이 끼어있음을 입증한다. 제약사들은 더 늦기 전에 리베이트시대와 결별하고 국민들로부터 믿음을 얻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