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용산개발 뒷짐진 서울시

이호기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청 도시계획과 사무실에는 오전부터 서부이촌동 주민들 20여명이 우르르 몰려와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모두 봉쇄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맡은 시행사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 직원들이 지구지정 신청서를 접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수용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사업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쫓겨날 것이란 주민들의 불안감은 고성과 욕설로 나타났다.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져 한 시행사 직원은 옷이 찢어지는 봉변까지 당했다. 당시 중재자 입장에 놓인 용산구 측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관공서에 난입해 소란을 피운 주민들은 가만 놔 둔 채 "왜 제대로 주민 설득을 못해 이 지경을 만들었느냐"며 시행사 직원들을 꾸짖었다. 결국 시행사 측은 신청서 접수를 포기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서부이촌동 개발을 떠맡긴 채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서울시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코레일 측은 2007년 당시 용산철도창 부지를 초고층 빌딩을 포함한 국제업무지구로 조성하겠다는 제안서를 서울시에 냈지만 시는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며 낙후된 서부이촌동을 통합 개발할 것을 주장했다. 도시계획 권한을 쥔 서울시의 의견이 결국 받아들여졌고 삼성물산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드림허브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가 사업권을 따냈다. 서울시는 민간 시행사가 출범한 만큼 주민 설득을 포함한 사업의 모든 권한과 책임은 시행사 측에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기관으로서 누구 편을 들 수 없는 게 아니냐"면서 "수익성을 위한 민간 사업인 만큼 각 이해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스스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지형을 단번에 바꾸게 될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총 사업비만도 28조원에 달한다. 그만큼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다. 게다가 문제가 되고 있는 서부이촌동 통합 개발은 다름아닌 서울시가 제안한 아이디어다.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서울시는 이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과거 청계천 복원을 위해 직접 주민 설득에 나섰던 전임 시장의 모습까지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