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소설처럼 빠른 템포로 능글맞은 탐정役 변신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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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림자살인' 주연 황정민황정민(39)은 영화라는 상품을 작품으로 탈바꿈시킬 줄 아는 몇 안되는 배우다. 화려한 외모 대신 평범한 용모로 잘 짜여진 이야기에 꼭 들어맞는 캐릭터를 창조한다.
'달콤한 인생'의 비열한 조폭,'사생결단'의 집념의 형사,'너는 내 운명'의 에이즈에 걸린 창녀를 사랑하는 순박한 농부,'행복'의 연인을 배반하는 건달 등 상반된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신작 스릴러 '그림자 살인'(감독 박대민)에서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 홍진호 역을 맡았다. 셜록 홈즈처럼 세련되고 지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차이나타운'의 잭 니콜슨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능글맞은 인물이다.
"홍진호 역은 제 연기 생활에 한 획을 긋는 것과 같습니다. 이전에는 잘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컸지만 이번에는 즐기면서 임했으니까요. 관객들도 즐기게 될 겁니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어 출연했거든요. 그게 제 (연기)작업의 핵심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관객들이 흥미를 잃는다면 출연할 이유가 없어요. 여러 작품에서 상반된 캐릭터를 맡았던 것도 시나리오를 먼저 고려한 결과입니다. "
홍진호는 의뢰를 받아 불륜 현장을 포착하다가 곡절 끝에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서게 된다. "억압을 상징하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열린' 캐릭터예요. 형사 역처럼 적극적이거나 진지하지 않아요. 사건이 해결되면 좋고,안되면 말고 식이죠.이건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홍진호는 어둡지 않고 유쾌한 인물이 됐어요. 관객들도 유쾌한 탐정소설 한 편을 읽는 기분일 겁니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푹빠져 몇 정거장 지나치게 되는 그런 소설 말이죠."
홍진호뿐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들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망원경과 청진기 등을 탐정에게 만들어주는 여성 발명가(엄지원),해부 실습을 위해 저잣거리에서 시체를 수습하는 의학도(류덕환),범인을 못 찾으면 만들어내는 엉터리 순사(오달수),희한한 묘기를 선보이는 서커스단원까지.그들은 저마다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100년 전이 배경이지만 너무나 현대적인 이야기예요. 웬만한 영화보다 속도가 빠릅니다. 빠른 템포를 가져가는 데 집중했거든요. 마치 '매트릭스'나 '본' 시리즈를 보는 듯할 거예요. "숨막히는 추격전은 기본이다. 일본이 한국을 아편으로 무력화시키려는 음모가 등장하고,요즘 세간을 달구고 있는 '성상납' 사건을 연상시키는 소아성애 스캔들도 나온다.
"그렇지만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복식과 인물 관계 등은 철저히 고증을 거쳤습니다. 지퍼 대신 단추와 멜빵 달린 신사복,단정한 상고머리와 창이 짧은 중절모가 등장합니다. 대가집 마님과 평민 간의 격식어린 관계와 '아니외다''그랬소' 등 문어체 대사까지 그대로 살렸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느낌을 갖게 될 겁니다. "
그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후 6년간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 2000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데뷔해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차기작은 방송드라마 '식스 먼스'에서 김아중과 사랑을 나누는 우체국 직원 역으로 결정됐다.
유재혁/김기현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