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 '장사꾼'으로 거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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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최근 한국은 알 카에다의 테러와 북한의 위험성을 경험했다. 문명 세계의 공적(公敵)처럼 되어 버린 테러 집단과 끝없이 문제를 일으켜 온 북한이 주는 위험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알 카에다가 한국을 '찍었다면' 그것은 새로운 일이고,북한과의 관계도 새롭게 악화돼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알카에다ㆍ대북정책 등 난관 직면
적대세력 아우를 국가전략 필요
알 카에다가 북한처럼 한국을 적대시한다면 거기에는 공통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둘 다 한국을 서방적 가치의 맹종자,'미국 앞잡이'라고 보는 것 아닌가. 이것은 물론 잘못된 인식이다. 이들의 인식이 잘못된 이유는 한마디로 이들이 과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을 한 세기 전의 제국주의 시대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알 카에다 역시 과거의 교리에 매달리는 근본주의자 집단이다. 이런 시대착오의 핵심은 2차대전 후 일어난 세계 체제의 변화를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 전까지는 개도국이 경제적으로 선진국과 통합된다는 것은 식민지가 되거나 정치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체제에서는 사정이 바뀌었다. 오히려 선진국과 경제적으로 통합해서 그 시장 기술 자본을 활용하지 않으면 정치적 독립을 지키기도 어렵게 된 것이 전후의 실정인 것이다.
한국이 전후 200개에 가까운 개도국 중 가장 빨리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바로 그런 조건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대다수 개도국이 그런 사실을 깨닫고 한국을 모방하게 됐다. 이런 '대전환'의 대열에서 뒤처진 것이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북한이다. 결국 알 카에다와 북한의 그런 인식은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 과거에 매달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인식이 틀린 진짜 이유는 한국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를 모른다는 점이다. 전후 세계 체제하에 경제 발전을 하면서 한국의 모습은 변하였다. '냉전의 최전방 전사'였던 한국인이 '세계의 장사꾼'으로 바뀌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맥락에서 중동과 같은 개도국에 대한 진출과 북방 외교가 펼쳐졌다. 대북 정책도 기본적으로 그런 선상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알 카에다와 북한의 위협과 관련해 한국이 생각해 볼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장사꾼이란 원래 도둑과도 친해 놓고 원수와도 악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알 카에다가 한국인을 테러 대상으로 '찍었다면' 그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중동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반영해서 그렇게 됐다는 중동 전문가의 이야기가 맞는다면 더욱 문제다. 이라크나 아프간에 파병한 것 때문에 그리 된 것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일부 국민이 종교적 이유로 그런 이미지를 자초했다면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조금은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장사꾼이라고 자기 안보를 소홀히 하고 상대방에게 휘둘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사꾼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무시해도 된다는 법도 물론 없다. 그러나 예컨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 결의에는 기권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 결의에는 찬성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혹시 그것이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면서 알 카에다의 적개심을 사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겠는가.
지금 한국의 국가경영 전략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세계 속에서 '장사꾼'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의 반성도 있어야 하겠지만 정부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것이 바로 국민이 '실용 정부'에 기대하는 역할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