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부서간 벽 쌓는 주범들 따끔하게 혼내는 법

스패닝 사일로 데이비드 아커 지음| 이상민·최윤희 옮김|비즈니스북스|400쪽|2만원
sillo 원통형 곡식 저장고, 저자는 조직내 담 쌓는 고립된 성채로 비유했다
오길비앤매더의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기업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사일로!"

사일로(silo)는 곡식을 저장해 두는 원통형 창고를 가리키는 말.우리나라에서도 목축 농장에서 사료를 저장하는 다양한 크기의 사일로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일로가 제너럴모터스(GM)나 휴렛팩커드,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에도 있다는 얘기다. 무슨 얘기냐 하면 조직 안에 담을 쌓고 농성하는 형태로 다른 부서와 소통하지 않는 고립된 성채 같은 존재를 말한다. 최근 경영학에서는 '조직 내 부서간의 장벽' 또는 '부서 이기주의'를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쓰이는데,이 사일로가 글로벌 브랜드를 꿈꾸는 기업들의 핵심적인 과제로 주목받고 있다.

《스패닝 사일로(Spanning Silo)》는 브랜드 분야의 대가로 통하는 데이비드 아커 버클리대 교수의 2008년 최신작으로 기업조직 안에 진을 치고 있는 농성 부서의 문제를 브랜드와 조직경영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아커 교수는 미국 기업들의 CEO 임기가 평균 54개월인 데 반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최고마케팅책임자(Chief Marketing Officer · CMO)의 임기는 23개월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에 주목한다. CMO의 생명이 짧거나 그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은 마케팅 환경이 치열한 데다 조직의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인데,저자는 그것의 근본 원인을 바로 이 사일로에서 찾는다. 독립적인 사일로들이 힘을 지니게 될 때 기업은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당장 브랜드 정체성이 훼손되고 마케팅 효과는 반감되며 결과적으로 기업 이미지가 타격을 입게 된다.

아커 교수가 제시하는 사일로 문제 해법은 한마디로 '마케팅 그룹을 중앙집권화하라'는 것이다. 기업의 활동 범위가 글로벌화할수록 농성하는 사일로의 특징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런 다양성에 대응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중앙집권적이고 통합적인 역할을 하게 될 핵심 마케팅 부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이야기는 CMO가 어떤 방식으로 사일로를 조직의 일원으로 연결하고 효율화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당장 중앙집권적인 마케팅에 저항하게 될 사일로에게는 분명한 역할과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으며 마케팅 활동을 '전술'로만 이해하는 그들에게 마스터 브랜드를 보여 주고 더 큰 전략의 세계로 이끌어 주라고 권고한다. 사일로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마케팅을 개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브랜드 대가인 저자는 마지막으로 불황을 넘는 방법 몇 가지를 알려 준다. 첫째,불황기일수록 브랜드 전략을 강화하되 대표되는 브랜드에 자산을 집중할 것.둘째,광고 같은 대중 매체보다 고객을 직접 파고들 수단에 눈을 돌려 보자는 것이다.

이 책은 40여개 기업의 경영진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일로 같은 조직 관리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전체 9개 장의 끝에는 체크 리스트를 겸한 '논의할 점'을 덧붙여 현장 CMO의 매뉴얼로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