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우산을 뺏기만 하는 카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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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설 경제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지난 25일 한 독자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내며 물었다. "최소한 5년간 고용한다고 해놓고 3개월 전에만 해고 사실을 통보하면 언제 잘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나요?"
속으론 노동담당 기자한테 물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듣기로 했다. 알고보니 그 독자는 노동법이 아닌 신용카드사에 단단히 뿔이 나 있었다. 이유는 이랬다. 그 독자는 1년여 전 A카드사 콜센터를 통해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었다. 한 달에 10만원만 카드로 결제하면 각종 할인 및 포인트 적립 혜택을 이용할 수 있고 연회비도 없다는 말에 솔깃해서다. 카드 유효기간이 5년이기 때문에 최소 5년간은 그 혜택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도 똑똑히 들었다.
그랬는데 얼마 전 갑자기 A카드사로부터 부가서비스를 줄이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오는 7월부터 세금 납부나 무이자할부 이용금액에 대해서는 포인트를 주지 않고 각종 할인 혜택을 이용하려면 한 달에 10만원이 아닌 20만원 이상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독자는 화가 나 그 카드사에 따졌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신용카드 표준약관'에 '3개월 전에 통지하면 회원에게 제공하는 부가서비스를 얼마든지 변경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독자와 전화를 끊고 수소문해보니 A카드사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 '3개월 전에만 고객에게 통보하면 문제없다'는 이른바 '3개월 룰'을 이용해 올 들어 모든 금융사들이 일방적으로 부가서비스를 줄였던 것이다. 국민 · 우리 · 하나은행뿐 아니라 신한 · 현대 · 삼성 · 롯데카드까지 한 곳도 예외가 없었다.
카드사들도 할 말은 있다. 금융위기에 실물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이 떨어져 부가서비스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경기가 살아나면 부가서비스를 원상복구시켜줘야 하는데도 그런 카드사는 지금껏 한 곳도 없었다. 카드 유효기간인 5년 동안은 고객과 처음 약속한 부가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는 게 원칙인데도 말이다. 이번에 신한카드 등 대부분의 카드사들은 부가서비스를 줄인다는 메일을 고객에게 보내면서 "향후 더 좋은 서비스로 고객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문구를 달았다. 이 약속을 지키는 카드사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