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는 유동성 장세론] 외국인 매수세에 예탁금 급증…증시 단기랠리 기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며 강하게 반등 중인 증시에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외국인과 프로그램 매수의 힘으로 1200선에 안착한 코스피지수가 시중부동자금 유입 효과까지 더해지면 1300선 돌파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많다.

증시 분석가들은 시중 단기자금이 800조원에 육박한 데다 금리도 하향 추세여서 부동 자금이 증시로 들어올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개인들이 주식투자를 위해 증권사에 맡겨놓은 고객예탁금도 이달들어 2조원 이상 늘어났다. 경기가 저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시중 자금이 가계나 기업으로 충분히 흘러들어가지 않고 있고 해외 금융위기가 다시 재발할 수 있어 유동성 장세를 섣불리 기대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있다.


◆유동성 장세 임박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년 미만의 단기자금은 2월 말 기준으로 784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는 은행 수시입출금식예금(MMDA)과 저축예금,머니마켓펀드(MMF)와 단기 채권형펀드,요구불 예금,양도성 예금증서(CD)와 환매조건부채권(RP),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고객예탁금 등이 포함됐다. 이는 같은 시기의 금융권 총수신 1525조4000억원의 절반인 51%에 달하는 규모다. 단기자금 규모는 2006년 말 611조원에서 2007년 말 665조원,작년 말 749조원 등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증시 주변 동향이 유동성 장세로 진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상당부분 만족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교보증권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경기저점 근접 △주식의 저평가 △국내 자금시장의 경색 완화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현상의 완화 등을 꼽았다. 이 증권사의 주상철 연구원은 "경기저점 근접과 주식 저평가 조건은 거의 충족됐다고 판단한다"며 "신용경색과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완화되면 2분기부터는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강세도 진정되면서 국내 증시에 유동성 장세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금리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증시로의 자금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급 회사채의 월 평균 수익률은 1월 7.3%에서 이달에는 6% 안팎으로 하락했다. 이에따라 국고채 3년물 수익률과의 차이(스프레드)는 연초 4%포인트에서 최근 2.3%포인트 수준까지 좁혀졌다. 이우현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2.00%로 낮춘 탓에 예금금리가 연 3%대로 급락했다"며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에 진입했으며 이는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빈아 교보증권 연구원도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초과 유동성은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갔고 3월 말 기준으로는 더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증시 불확실성이 빠르게 완화되고 있어 대기자금이 증시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4월부터는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며 지수를 '레벨 업' 시킬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정훈 대우증권 연구원은 "최근 상승장에서 금융 건설 등 업종이 주도하고 있는 것은 유동성 랠리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2분기 지수는 1300선 이상으로 도약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경기회복 가시화되면 랠리 본격화

시중에 현금성 자산은 풍부하지만 이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은행과 KTB투자증권에 따르면 본원통화의 전년동기대비 증가율은 지난해 10월 7%에서 올 들어 27%까지 크게 올랐지만 광의의 통화인 M2 증가율은 이 기간 14%에서 11%대로 오히려 하락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화폐 공급이 늘더라도 민간부문의 화폐 수요가 커지지 않으면,즉 화폐의 유통속도가 빨라지지 않으면 통화량 증가가 실물을 부양하는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해정 대신증권 연구원도 "시중에 현금성 자산은 넘쳐 나지만 비현금성 자산을 포함하는 유동성 지표의 증가속도는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며 "유동성 장세를 기대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회사채 'BBB-'급의 월 평균 수익률은 1월 11.95%에서 3월에는 12.11%로 상승했다. 'AA-'급과 달리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는 아직 국고채와의 스프레드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최성락 SK증권 연구원은 "투기등급 회사채 시장은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다"며 "증시가 유동성 랠리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경기회복과 기업 이익 개선 신호가 동반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