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엮기' 달인…박연차의 인맥관리 어떻길래…

"먹어도 탈없는 돈"…통큰 배팅으로 전방위 로비
검찰, 서갑원 재소환…박 회장과 대질 신문키로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 대상에 전 · 현 청와대 핵심인사는 물론 여 · 야 국회의원 등이 줄줄이 포함되면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64)의 폭넓은 인맥관리 방식에 세간의 관심이 다시 쏠리고 있다. '사람 엮기'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박 회장의 네트워크가 광범위한 것에 대해 "적군과 아군의 구분없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실력자들과 친분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하는 반응이다.

박 회장을 잘 아는 부산 · 경남 지역 기업인들은 첫 번째 비결로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며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꼽았다. 1990년대 초부터 박 회장을 알고 지내는 경남 지역의 한 기업인은 "90년 대 중반에 중국에 같이 갔는데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면서 중국 측 파트너들과 금세 친해져 어깨동무를 하고 건배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기업인은 또 "차 트렁크에 양주를 싣고 다니며 좋은 사람을 만나면 즉석에서 폭탄주로 우의를 다지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비결로는 "예상을 뛰어넘는 '통큰 베팅'을 하는 데다 '먹어도 절대 탈 없는 돈'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부산 녹산공단의 한 기업인은 "박 회장의 베팅 금액은 다른 사람이 주는 돈보다 적게는 5배,많게는 10배 이상인 데다 상대가 대가성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편한 방식으로 줬기 때문에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박 회장이 입이 무거워 그동안 별 탈이 없었다는 게 정설"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의 한 신발업체 기업인은 "박 회장은 절대 돈을 주고 난 뒤 돌려받지 않는다"면서 "이럴 경우 돈받은 사람은 더 미안해 다음에 반드시 은혜(?)를 갚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경남지역 기업인 K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최고 엘리트 집단과의 교분을 즐기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며 "때론 이를 과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 때때로 상대방에게 작은 감동을 주는 방식으로 마음을 샀다는 후문이다. 친분을 맺고 싶은 사람의 결혼 기념일이나 자녀의 대학 입학 등을 챙겨 자신을 각인시키기도 하고,인연을 맺은 기업인에게 자신의 회사가 생산하는 '나이키'운동화를 대량으로 보내 직원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기도 했다. 지역 유지인 A모씨가 부모상을 당했을 때는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베트남에서 귀국하자마자 조문한 뒤 상당한 액수의 조의금을 내놓기도 했다. 또 박 회장이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장소로 이용한 뉴욕 한인식당의 여직원 남편이 어렵게 공부하는 유학생이라는 얘기를 듣고 즉석에서 5000달러를 건네줬다는 일화는 박 회장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큰 돈을 쓴다는 소문을 돌게 했다.

박 회장은 이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귈 때 상대가 쉽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점도 광범위한 인맥을 쌓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예를 들면 손님을 최고급 술집으로 모신 뒤 술자리를 흥겹게 하기 위해 스스로 각종 퍼포먼스를 펼쳐 상대가 자신을 편하게 여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한차례 조사를 마친 서갑원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30일 다시 불러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서 의원과 박 회장을 대질신문해 서 의원의 혐의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서 의원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조사를 받겠다"며 "그러나 원내 수석부대표로서 4월 임시국회 일정 협상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내일 출석은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은 앞서 박 회장과 대질신문을 벌인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신병처리도 조만간 결정하기로 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 의원은 구속된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마찬가지로 미국 뉴욕 맨해튼 강서회관에서 박 회장의 대리접대 지시를 받은 업소 대표 K모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만 달러를 받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부산=김태현/이해성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