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옹졸한' 오바마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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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지난주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의 거액 보너스 지급 논란으로 미국이 들끓고 있을 때다. 미 노동부와 국무부는 자국민 일자리 보호 조치를 슬그머니 내놨다. 미국 내 농업과 서비스업 일자리에 외국인 근로자를 거부하는 비자 정책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 소식은 AIG가 회사를 몰락시킨 파생상품부 임직원들을 붙잡아 둔다며 1억6500만달러의 잔류 보너스를 지급하면서 폭발한 미국인들의 분노에 파묻혀 주목받지는 못했다.
미 노동부는 외국인들의 농업 부문 임시직 비자인 H-2A 발급을 9개월간 중단할지 여부를 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미 농업인들에게 해외 일꾼 말고 미국인들을 고용하라는 주문이었다. 국무부는 호텔이나 골프리조트 여름캠프 등의 운영업자들에게 J-1 비자를 가진 외국인 임시 직원 수를 줄이고 미국인 채용을 늘릴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미 의회가 구제 금융을 받은 금융사들에 전문직 외국인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H-1B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조항을 경기부양법에 반영,비난을 사더니 노동부와 국무부는 이보다 한술 더 뜬 셈이다. 미 정부와 의회가 갈수록 내부 지향적인 정책과 법을 내놓는 데는 변명거리가 없지 않다. 지난해 1월 4.9%이던 실업률은 지난 2월 현재 8.1%로 1년여 만에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7870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시행해도 실업률을 7% 수준으로 묶을까 말까한 마당에 임시직 외국인들까지 경기부양 열차에 공짜로 태워 줄 수는 없다는 속내가 작용하고 있다.
흔히 미국의 국가 경쟁력을 논할 때면 빼놓지 않고 꼽는 요소가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대량 유입을 허용하는 개방 정책이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경쟁 국가들과 일본은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노령화 탓에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미국처럼 외국인 근로자 수입에 관대하지 않다. 미국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젊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흡수하면서 각종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고령화 덫을 피해 가는 생산성 제고 효과는 물론 평균 임금을 낮추는 덤마저 얻었다.
그런 미국이 불황을 빌미삼아 '닫힌 경제'로 내닫고 있는 것이다. 보호무역 조치에다 일자리 보호정책까지 겹씌운 꼴이다. 정부와 의회는 경기부양 프로젝트에 철강 등 미국산 제품만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조항을 지난 2월 경기부양법에 포함시켰다.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이 모인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 장벽을 쌓지 말자고 한 합의를 몇 개월 새 걷어찼다. '바이 아메리칸'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게 미 정부와 의회의 강변이나 세계 각국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달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지난 1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데뷔하는 국제 무대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보호주의를 배격하며,글로벌 리더십을 되찾겠다고 천명해 왔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르고 불쑥불쑥 문을 닫아 거는 옹졸한 리더십으로는 곤란하다. 가뜩이나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은 이번 회의에서 달러화의 기축통화 유지 문제를 공식 제기할 태세다. 자칫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미국의 위상에 도전하는 국가들에 시달리다가 돌아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