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추경에 필요한 '선택과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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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일정부가 경제위기의 조기극복을 위해 총 28조9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른바 슈퍼추경이라 불리는 이번 추경예산안에 대해 제기되는 이슈는 우선 규모가 너무 커서 재정건전성이 위협받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번 추경 중 17조7000억원의 지출확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차 추경 때에 비해 약 2.6배가 넘는 규모다. 따라서 재정적자가 커지고 국가채무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 비판론의 입장이다.
정밀한 집행계획 짜야 낭비막아
효율적 관리위해 사업 단순화하길
물론 재정건전성은 중장기적으로 중요한 이슈이지만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단기적으로 총수요 보전이 더 중요하다. 정부 계산에 따르면 관리대상수지의 적자 규모는 GDP의 5.4%로 예측돼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수준인 5%를 약간 상회하는 규모이지만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다. 경기회복이 우선과제라는 공감대가 있다면 단기적으로 이 정도의 무리는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야당 등 일부에서는 세입 확보를 위해 정부가 감세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감세는 재정지출과 함께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지금은 오히려 감세를 추진해야지 포기하거나 유예할 상황이 아니다. 이번 추경에서 정작 걱정되는 점은 과연 소기의 효과를 달성하도록 예산과 집행계획이 짜여 있느냐는 것이다. 예산안은 저소득층의 생활안정과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위기로 어려운 저소득층을 돕는다는 명분이 너무나 훌륭하므로 거기에 눌려 사업효과에 대해 사람들이 꼼꼼히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낭비와 부정이 만연하고 엄청난 규모의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거두는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
예컨대 이번 추경안을 보면 2조원을 풀어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에게 공공근로를 시키고 한 달에 83만원씩 지원함으로써 무려 4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 있다. 일자리가 없는 40만명에게 기회가 돌아간다면 일자리 창출도 되고 생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왕에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 자기 일을 버리고 이쪽으로 옮겨온다면 이건 일자리 대체일 뿐 일자리 창출이 아니다. 생각해보라.하루에 12시간씩 힘들게 일해서 100만원을 간신히 버는 영세자영인이 있다면 사람에 따라서 수입은 비록 83만원으로 줄지만 몸과 마음이 몇 배 편한 공공근로를 선호하지 않겠는가? 외환위기 직후 몇 년 동안 우리는 64만원짜리 공공근로가 더 좋다고 90만원짜리 3D직장을 버리고 옮기는 케이스들을 많이 봤다. 이런 부작용을 없애고자 제도를 정밀하게 운영하라고 하면 일선 공무원은 책임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규제를 잔뜩 만든다. 그 결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사업효과가 떨어지는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현재 정부는 저소득층 대학생에게 캠퍼스에서 파트타임 일자리를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대상이 저소득층이어야 한다는 요건은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만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은 여기서 더 나아가 실험보조 등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여야 한다고 규제하고 있다. 학부 학생은 아직 그 정도의 전문성이 없다. 결국 저소득층 학생도 있고 이들을 돕는 제도도 있지만 연결이 안 된다.
내 돈이 아닌 공공예산의 집행에서 이런 인센티브 왜곡은 피하기 어렵지만 최소화하는 노력은 있어야 한다. 이번 추경이 효과적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의 행정력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사업 종류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 제출된 안은 사업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 어지럽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국회심의에서는 '실천가능한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목표로 사업을 압축했으면 한다. 그리고 정부는 조사 및 교육 등 단기적으로 가능한 전달체계 보완에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