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급락 막자"… FRB, 엔ㆍ유로와 '逆 통화 스와프'
입력
수정
달러자산 선호 현상 퇴조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6일(현지시간) 유럽연합 영국 일본 스위스 중앙은행 등과 달러를 맡기고 해당국 통화를 가져오기로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달러 유동성 공급 목적이 아닌 외국 통화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통화스와프를 맺은 것은 이례적이다.
외국 통화 부족사태 대비
2870억弗 4개 통화와 교환
스와프 한도는 △영국 300억파운드 △일본 10조엔 △유럽중앙은행(ECB) 800억유로 △스위스 400억프랑 등이다. 미 달러로 환산하면 총 2850억달러에 달한다. FRB는 이렇게 확보된 외국 통화를 유동성이 필요한 미국 금융사에 제공할 계획이라고만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배경은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최근 금융시장이 점차 안정을 되찾으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미 달러화 선호 현상이 퇴조할 가능성이 커지자 FRB가 통화 시장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주요국과 공조체제를 사전에 구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에 따른 신용공황으로 안전자산인 미 달러화에 글로벌 자금이 몰리면서 달러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 달러화에 몰려던 세계 자금이 각국 통화자산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 최대 채권국인 중국이 미 국채 발행 증가에 따른 달러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주요국과 공조를 구축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통화시장 안정을 꾀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달러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FRB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비드 길모어 FX애널리틱스의 통화 전략가는 "이번 통화스와프 체결은 중장기적으로 달러가치의 안정을 꾀하려는 FRB의 정책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FRB는 기존에 13개국 중앙은행과 맺은 통화스와프를 통해서는 달러화를 공급하는 데 초점을 뒀다. 달러화를 제때 구하지 못하는 나라의 중앙은행을 통해 금융사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취지였다. FRB는 달러를 빌려주면서 확보한 상대국 통화는 해당국 중앙은행에 맡긴 채 사실상 활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4개 중앙은행과 맺은 통화스와프는 성격이 다르다. 예전처럼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려는 게 아니라 필요할 경우 미 달러를 맡기고 해당국 통화를 미국 금융사에 공급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물론 당장 미 상업은행들이 해외 통화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라이트손ICAP의 루이스 크랜달 머니마켓 애널리스트는 "금융사들이 FRB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외국 통화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 상업은행들은 해외 통화 자산 비중이 높지 않은 편이다. 유럽 은행들이 미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가 컸던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때문에 FRB는 중앙은행 간 국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주요국 통화 수요 변화에 따른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차원에서 이번 통화스와프를 맺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을 비롯한 미 언론은 이번 조치가 유사 시를 대비한 선제적인 조치로 금융시장에 또 하나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